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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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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스토리아K 2020. 8. 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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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02.21.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산당선언 발표

1889.07.14. 제2인터내셔널 성립, 프랑스 파리에서 마르크스주의 기반의 사회주의 운동 기구

1917.03.12. 러시아 2월 혁명, 황제 퇴위(03.15), 로마노프왕조 멸망. 케렌스키, 임시정부 조직

1917.11.07. 러시아 10월 혁명,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공화국 붕괴되고 소비에트정부 수립, 수상 레닌

1918.05.11. 한인사회당 창당, 이동휘 등이 하바로프스크에서 결성

1919.03.02.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설립, 국제공산당창건 선포

1919.09.05. 고려공산당 창당,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김철훈.오하묵 등 창당

1919.11.10. 의열단(義烈團) 조직, 김원봉.박재혁.최수봉.김익상.김상옥.김지섭.나석주 등

1920.01.22. 러시아 볼셰비키당의 한인지부인 '이르쿠츠크공산당 고려부' 조직, 대표 김철훈

1920.07.05. 전로한인공산당(全露韓人共産黨) 창당, 김철훈 등이 이르쿠츠크에서 결성

1921.05.04. 한인공산주의자대회를 개최(~05.17)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을 결성

1921.06.27. 자유시 참변, 러시아 붉은 군대가 대한독립군단을 공격, 독립군 300여명 사망, 900여명 소련이 포로, 세력이 모두 와해

1922.12.30. 소비에트 연방(소련)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탄생

1923.01.17.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서 고려공산당 중앙총국 발족

1924.04.16.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결성, 김사국·최창익·이영 등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진영이 참여

1924.04.18.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발족, 노동운동을 농민운동으로 확대,1927년9월6일.해체

1925.04.17.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창당, 김재봉·조봉암·박헌영·김단야·김약수·조동호 등 주축으로 비밀 조직

1925.04.18. 고려공산청년회 조직, 박헌영·김단야·조봉암 등이 비밀리에 공산주의 청년 동맹을 조직

1925.06.11. 미쓰야 협약, 일제와 만주 군벌이 공동으로 독립군 소탕을 합의,독립군활동 위축

1925.08.24.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결성

1925.11.22.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 박헌영·김약수 등 지도부 30여 명 체포

1926.03.08. 의열단원 24명이 국민당 정부의 황포군관학교에 4기로 입교

1926.05.01. 양기택 등이 길림성 고려혁명당 결성*

1926.06.10. 제2차 조선공산당사건, 순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민중봉기를 계획하나 사전 발각되어 100여 명의 당원이 체포, 화요파 조선공산당은 와해됨

1927.02.15. 신간회 조직, 민족·공산 양진영이 민족단일전선을 형성, 1931년5월16일.해산

1927.04.27. 중국 공산당은 우한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국공합작을 유지하라는 코민테른 방침을 따름

1927.07.13.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국민정부에서 철수를 선언

1927.10.02. 제1차 간도공산당사건,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간부 등 100여 명 체포

1927.12.10. 이리청년회사건(ML조선공산당 조직)

1928.02.02.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ML당 사건) 김준연 등 34명이 구속

1928.08.26. 제4차 조선공산당사건, 조선공산당 재건사건으로 170여명이 구속

1928.09.02. 제2차 간도공산당사건, 고려공산당청년회 만주 총국 간부 등 72명 체포

1929.01.13. 원산 총파업, 기간(~04.06.) 원산지역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벌인 총파업, 3천여 명 노동자 참여

 

1929.06.05. 제5차 공산당사건, 안상훈 등 54명의 고려공산당 재건계획이 탄로나 구속

1929.09.20. 길림성에서 조선혁명당 결성

1929.10. 조선공산당재건동맹 결성, 북경에서 안광천 주도 김원봉·박건웅·이영준·박차정 등이 참여

1930.04. 레닌주의정치학교 설립, 김원봉 등이 북경에 사회주의 혁명운동가를 양성

1930.05.01. 제3차 간도공산당사건,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간부 등 130여명 체포

1934.11.26. 조선혁명군정부 탄생, 고이허를 통령으로 군사정부가 탄생, 양세봉 주도 조선혁명군 편성

1935.07.05.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결성, 중국 남경에서 김원봉·김두봉·김규식 등이 결성

1936.03.01.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連軍) 조직, 만주지역에서 중국인과 한인의 연합부대로 김일성·김책·최용건 등 참여

1937.06.04. 보천보전투, 김일성의 빨치산부대는 함남 갑산군 혜산진 보천보 관공서와 상점 등을 습격해 무기와 식량 등을 약탈하고 민간인 2명을 살해함

1937.08.22. 팔로군 창설, 중국 공산당의 당군으로 후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됨

1937.11.02.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 결성, 민족혁명당은 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혁명자연맹 등을 규합하여 결성

1938.10.10.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조직, 김원봉과 민족혁명당 주도로 결성되어 중국 장제스 정부의 지휘를 받음, 중국 국민당 군대에 소속되어 일본군 포로의 심문과 선전을 담당한 비전투 조직임

1939.05. 경성콤그룹 결성, 공산주의 비밀조직으로 김삼룡·이현상·정태식·이관술·이금순·박진홍·박헌영 등 참여

1940.09.17. 광복군(光復軍) 출범, 중화민국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대를 결성, 총사령관 지청천, 참모장 이범석

1940.10.23. 김일성은 일본군의 토벌에 쫓겨 소련으로 도주

1941.07.10. 조선의용대 화북지대(華北支隊) 결성, 신악·윤세주·박효삼·김창만 등 중심

1941.11.

19. 광복군은 활동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지휘권을 중국군 참모총장에게 넘김

1941.12.10. 조선민족혁명당, 임시정부에 대한 참여를 결의

1942.05.18. 조선의용대는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

1942.07.10.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사령관 무정)하고 중국 공산당과 함께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 참여

1942.08.01. 소련극동군은 동북항일연군을 '소련적군 88특별저격여단'으로 개편

1943.08.10. 여운형, 조선민족해방연맹(朝鮮民族解放聯盟) 결성

1944.04.22. 조선의용대 다수는 최창익의 지도하에 중국공산당 산하 팔로군에 합류

1944.08.10.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 결성, 여운형·조동호 등 주축으로 비밀 단체를 결성

1945.03.05.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법령 발표, 토지 무상 몰수 무상 분배 실시

1945.08.08. 소련은 대일본 참전을 선언하고 선봉군이 두만강 도하

1945.08.10.~08.15. 소련군 선봉군, 웅기군·나진·청진시를 차례로 점령

1945.08.11. 중국공산당, 조선의용군 2000명을 만주로 진격, 현지 조선인 충원하면서 중국 인민해방군 제164사단과 제166사단, 독립15사단으로 확대 개편

1945.08.15. 일본 정부 항복 선언, 포츠담 선언 수락,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조직

1945.08.15.~09.07.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결성, 여운형은 조선총독부의 정권이양교섭 수락

1945.08.16. 조선공산당 결성, 장안빌딩에서 결성(장안파) 이영·정백·이승엽·조동호·조두원·서중석·하필원·최익환 등, 11월23일.해산

1945.08.17. 건준 지도부 구성, 여운형 위원장으로 건준 지도부를 구성하고 학생 중심의 학도대와 치안대 결성

1945.08.20. 8월 테제 발표, 박헌영은 사회주의 혁명의 마르크스 전통이론에 따른다는 테제를 발표

1945.08.20.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再建委員會) 발족(재건파) 박헌영·김삼룡·이주하·이현상 등 경성콤그룹 중심

1945.08.22. 건준 중앙위원회 개편, 건준 중앙위원회를 12부 1국 체제로 확대 개편

1945.09.04. 건준 2차 개편에 박헌영계의 재건파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을 장악

1945.09.06. 건준은 전국인민대표자대회 개최하고 인민위원 55명 등을 선출, 조선인민공화국 선포, 주석에 이승만 추대, 10.07.해체

1945.09.08. 미군 인천 상륙,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제 7보병사단 인천에 상륙, 4만5천명

1945.09.08. 在京 공산주의 열성자회의 개최(계동 열성자대회) ▷조선인민보(朝鮮人民報) 창간

1945.09.08. 장안파공산당은 열성자대회 개최하여 당을 해체,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 중심으로 당 재건을 결의

1945.09.11. 조선공산당(조공) 재건, 합법적 공산주의 정당으로 재건, 책임비서 박헌영, 제2인자로 김일성 추대

1945.09.12. 서울시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 결성

1945.09.19. 소련 군함 푸가초프호 원상항 입항, 소련군88특별정찰여단 소속 대위 김일성 등 소련 국적의 한국인 80여명 상륙

1945.09.19.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解放日報) 발행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결성

1945.09.20. 스탈린, 북한에 독자적인 공산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극비 지령

1945.09.21. 김일성 일행 평양 입성

1945.09.25. 8월테제를 보완한 9월문건은 조선공산당의 혁명 노선을 제시, 조선혁명 지침서

1945.10.10. 아놀드 군정장관, 조선인민공화국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

1945.10.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개최, 김일성과 박헌영 회동

1945.10.11. 경성방적(京城紡織) 총파업

1945.10.12. 조선출판(朝鮮出版) 노동조합 결성. 인천시 인민위원회, 경상남도 인민위원회 결성

1945.10.13.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소련군 환경대회 개최, 김일성 최초 등장

1945.10.13.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결성, 분국 책임비서 김용범, 집행위원 김일성 선출

1945.10.16.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1차 확대집행위, 토지개혁 결정

1945.10.20. 전라남도 인민위원회 결성

1945.10.23.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조직, 한국민주당·한국국민당·조선공산당·건국동맹 등 조직, 초대 회장에 이승만 추대

1945.10.23. 매일신보는 미 국무부 극동국장 빈센트의 말을 인용,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 보도

1945.10.28. 미군정, 벽보 삐라 간행 및 배포 금지

1945.11.01.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기관지 '정로' 창간

1945.11.02. 신탁통치절대반대 선언,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이승만의 사회로 안재홍·여운형·박헌영·이갑성 등 참석

1945.11.05.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전평(全評) 결성(위원장 許成澤) 허성택은 1946년10월 월북, 북한 내각 노동상(1948.09) 석탄공업상(1957.09) 숙청(1958년)

1945.11.07. 이승만, 인공 주석 취임 거부

1945.11.12. 조선인민당(朝鮮人民黨) 창당(위원장 여운형) 여운형, 조선인민당 창당으로 박헌영과 결별 ▷건국동맹(建國同盟) 해체

1945.11.15.~17.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2차 확대집행위, 정권수립문제 논의

1945.11.15. 전국청년단체동맹(全國靑年團體同盟) 결성

1945.11.20. 전국인민위원회(全國人民委員會)대표자대회 개최

1945.11.23. 신의주 반공학생사건, 신의주 중학생들에 의한 반소. 반공 시위, 23명 사망

1945.11.23. 장안파공산당 해체

1945.12.03. 김원봉 귀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2진으로 귀국

1945.12.08. 전국농민조합총연맹(全國農民組合總聯盟)전농(全農) 결성대회

1945.12.09. 전국협동조합연맹(全國協同組合聯盟) 발기

1945.12.11.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청총(靑總) 결성

1945.12.12. 미군정 하지 장군은 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으로 인정

1945.12.13. 조선문학가동맹(朝鮮文學家同盟) 결성

1945.12.15. 김일성(金日成) 및 독립동맹(獨立同盟) 환영준비회 조직(위원장 洪命憙)

1945.12.16. 모스크바 3상회의, 미국·영국·소련·중국에 의한 한반도 신탁통치안 채택, 한반도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이 임시로 신탁통치를 결의

1945.12.17.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김일성을 책임 비서로 선출

1945.12.20. 이승만, 조선공산당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을 발표

1945.12.22. 조선부녀총동맹 결성(위원장 유영준)

1946.01.02. 조선공산당,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 지지 선언

1946.01.03. 조선공산당 중앙위, 민족통일자주독립촉성 서울시민대회 개최

1946.01.10.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 38도 이남 각도대표자대회 개최

1946.01.23. 反파쇼공동투쟁위원회 주최 美蘇대표단 환영대회 개최

1946.01.30. 중앙인민위원회, 친일파 민족반역자 규정원칙 발표

1946.01.31. 좌익세력,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결성준비위원회 구성

1946.02.08.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조직, 북한은 인민민주주의적 개혁에 박차

1946.02.11. 김일성은 평양에서 여운형 조선인민당 위원장과 회동

1946.02.14.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 선출, 조선민족혁명당은 인민공화당으로 개칭

1946.02.17. 박열, 동경서 신조선건설동맹(新朝鮮建設同盟) 결성 ▷김규식, 조선민족혁명당 탈당

1946.02.19. 민주주의민족전선(民主主義民族戰線) 결성, 의장단 여운형·박헌영·허헌·백남운·김원봉 등

1946.03.01. 3·1운동 기념행사(우익, 서울운동장, 좌익, 남산)

1946.03.05.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법령 공포, 무상몰수. 무상분배

1946.04.23. 제2회 전국인민위원회대표대회

1946.04.25. 조선민주청년동맹(朝鮮民主靑年同盟) 결성(위원장 조희영)

1946.05.01. 전평(全評),전농(全農) 주최로 메이데이 제60주년 기념대회 개최

1946.05.08.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조선공산당이 조선정판사에서 1,300만원의 위조지폐를 인쇄하고 유포

1946.05.15. 정판사(精版社) 위조지폐사건, 미군정은 조공 간부 등을 체포하고 전국 조공본부를 수색

1946.05.15. 조봉암은 조선공산당과 결별을 선언 ▷박헌영은 공산당에서 제명(1946.06) ▷농림부 장관(1948.07.22), 농지 개혁안 발표(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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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05.18. 조선정판사(朝鮮精版社) 폐쇄, 해방일보(解放日報) 발행정지처분

1946.05.22. 사회민주당(社會民主黨) 결성, 여운홍(여운형 친동생)·최근우 등

1946.06.03. 이승만 정읍발언,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노선을 천명, 임시정부론 제기

1946.06.03. 북조선공산당 중앙당학교 개교

1946.06.24. 미군정청, 서울주재 소련영사관 철수 결정

1946.07.01.~10. 조선공산당 대표단 모스크바 회동, 스탈린·박헌영·김일성 등 3당 합당 강조

1946.07.16.~22. 박헌영, 5차로 김일성과 비밀회동

1946.07.22.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결성, 북한 공산화에 동조하는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

1946.07.25. 좌우합작위원회 결성, 위원장 김규식 선출, 사상을 넘어 조선내 모든 조직 통합

1946.07.31. 전국학생총연맹 결성(위원장 李哲承)

1946.08.10. 북한 공업시설의 90% 이상 1034개소 국유화, 생산시설마다 목표치가 할당

1946.08.28. 북조선노동당(북로당) 창립대회(1차 당대회), 기간(~08.30.)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 합당, 북로당 위원장에 김두봉, 부위원장에 김일성 선출, 북로당 강령 발표

1946.09.01. 북조선로동당(북로당) 강령 발표. 북로당 기관지 '정로'와 조선신민당 기관지를 합동하여 '로동신문' 발간

1946.09.04. 3당 합동준비위원회 연석회의 개최, 남조선노동당준비위원회 구성

1946.09.05. 공산당·인민당·신민당의 좌익3당, 삼당합동(三黨合同)준비위원회 결성

1946.09.06. 미군정, 조공 간부들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 박헌영·이주하·이강국·권오직 등 사회교란 폭동음모 혐의

1946.09.06. 미군정, 조선인민보(朝鮮人民報) 등 6개 좌익일간지 정간

1946.09.07. 미군정, 박헌영·이강국 체포령, 이주하·홍남균 검거

1946.09.16.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회의, 여운형·허헌·백남운·홍명희·김원봉 등 참석

1946.09.23. 9월 총파업,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주도로 각 산업별 노동조합이 연대 투쟁 ▷부산지역 7천여 철도 노동자 파업을 시작으로 전국 15만여 노동자가 참여, 소련군정 200만엔 지원

1946.09.24. 조공(朝共), <남조선(南朝鮮) 노동자제군(勞動者諸君)에게 告함>제하의 삐라 살포

1946.09.25. 남조선총파업투쟁위원회 결성

1946.09.29. 박헌영은 미군정의 체포를 피해 남조선을 탈출하여 북조선에 도착(10.06)

1946.10.01. 김일성종합대학 개교, 초대 총장에 김두봉 취임, 김일성 우상화 작업 착수, 김두봉 숙청(1958.03)

1946.10.01. 10월 대구폭동, 박헌영 주도 9월 총파업에 연이어 일으킨 폭동, 사망자 1천여 명(경찰관 200여 명), 행불 3천6백여 명, 부상 2만 6천여 명, 소련군정 300만엔 자금지원

1946.10.07. 좌우합작위원회, 좌우합작7원칙 발표

1946.10.09. 조선민족청년단 창당, 이범석을 중심으로 반공 우파 단체, 안호상·김활란·현상윤

1946.10.15. 사회노동당 창당(社會勞動黨), 여운형·백남운·강진 등 참여, 1947년2월27일.해체

1946.10.23. 소련군정은 스티코프·김일성·박헌영 3자 회담에서 남로당 결성, 3당 구성비율 등을 결정함

1946.10.30. 화순탄광사건, 전평 소속의 탄광노동자 시위에 미군 발포로 3명 사망 33명 부상

1946.10.31. 소련군정, 업무계획 남조선 파업투쟁에 대한 보고서에 서명

1946.11.03.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소련군정 지시에 따라 북민전이 단일 후보 추천, 흑백함 선거 통해 3459명 인민위원 선출,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북민전)

1946.11.11. 전주형무소 죄수 400명 탈주

1946.11.12. 사회노동당, 남로당과 합당추진 결의

1946.11.17. 사회로동당 출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을 아우르는 사회로동당(사로당) 출범

1946.11.23.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남로당(南勞黨) 결성, 스탈린는 남조선 3당(조선공산당·조선신민당·조선인민당) 합당을 지시, 박헌영·허헌·이주하·김삼룡·이현상 등 참여 ▶남로당 상세내용 보기

1946.11.24. 북조선노동당 기관지(機關誌) '근로자' 창간

1946.11.25. 남로당은 당원이 53만 8천여명이라고 발표함

1946.11.30. 서북청년단 창설, 월남자 단체가 통합한 극우 반공주의 청년 단체, 대한청년단으로 통합(1948.12.19)

1946.12.02. 남조선로동당 대회, 총 585명 참가, 신민당·공산당·인민당 참여, 임시집행부 14명 선출, 의장에 허헌 선출

1946.12.02. 소련군정, 북한에 있는 박헌영이 서울의 허헌에게 지령을 하달하도록 지시

1946.12.07. 소련군정, 혁명자금(122만 루블)을 박헌영에게 보내라고 지시

1946.12.19. 소련군정, 북조선 인민회의 수립부터 실행계획과 정당별 의석 배분, 구성인원 숫자까지 지시

1946.12.22. 민중동맹(民衆同盟) 결성

1946.12.26. 소련군정, 북한의 교과서 편찬내용 및 목차까지 작성하여 제시

1947.02.08.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 간접선거로 북조선인민위원회 대의원 선출하여 북조선인민회의 구성, 위원장 김일성

1947.02.08. 북조선인민위원회 발족, 북한을 통치할 정식 정부로서 위원장은 김일성 선임

1947.02.27. 사회노동당(社會勞動黨) 해체, 북조선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의 심한 비난을 받고 자진 해체

1947.03.01. 3·1절 기념행사, 우익 서울운동장, 좌익 남산서 거행

1947.03.01. 제주 3·1사건, 남로당과 민전은 제주북국민학교에서 3.1기념식 강행, 동원한 군중 3만 여명이 참석, 경찰이 군중의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고 발포하여 6명이 사망

1947.03.10. 남로당 주도로 제주도 총파업에 돌입, 전체 직장 95%인 166개 기관과 단체 41,211명이 참여 

1947.03.22. 3·22 총파업, 남로당이 전국적으로 24시간 파업 ▷김원봉,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총파업 배후로 체포

1947.05.03.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결성(柳珍山)

1947.05.21.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1947.06.03. 군정청, 남조선과도정부(南朝鮮過度政府) 조직 ▷민족혁명당, 인민공화당으로 개칭

1947.06.05. 근로인민당(勤勞人民黨) 결성, 위원장 여운형·부위원장 장건상·이영·백남운

1947.07.01. 평양회의 개최

1947.07.19. 여운영 암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 등에 의해 암살

1947.07.21. 좌우익정당 70여단체, 구국대책위원회(救國對策委員會) 조직

1947.07.24. 남로당은 미소공동위 소련측 대표의 성명을 지지하는 담화 발표

1947.08.11. 미군정은 좌익 단체에 대한 폐쇄령과 좌익 인물 일제 검거 단행

1947.08.15. 8.15 좌익폭동 음모관련자 검거

1947.09.21. 대동청년단 창설, 지청천 중심 반공 청년 단체, 이후 대한청년단에 통합

1947.09.26. 소련, 미·소 양군의 동시 철군 제안

1947.10.01. 공주형무소 죄수 200명 탈옥

1947.10.18. 남조선해방통신(南朝鮮解放通信) 행정령 7호 위반으로 폐쇄

1947.11.14. 유엔총회, 한국에 관한 결의 채택, 유엔 감시하에 남북 자유 선거, 통일정부 수립

1947.12.11. 남로당 중앙위원회는 단독정부·단독선거 반대와 미소양군 철수를 주장, 1947.12. 좌우합작위원회 해산

1948.01.01. 강동정치학원 설립, 북한은 남로당 활동을 지원할 정치공작대를 양성하기 위한 군사교육기관을 설립

1948.01.03.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 사건, 부산을 중심으로 공산화를 기도한 관련자 400명 체포

1948.01.23. UN한국임시위원단 입북 소련측이 거부

1948.02.07. 남로당 폭동, 남한단독선거 반대 전국적 파업과 폭동으로 100여 명 사망, 8500여명 체포

1948.02.08. 북한정권 조선인민군 창설, 총 병력 6만, 탱크연대 편성, 항공기·자주포 등 무장

1948.02.16. 김구·김규식, 김일성·김두봉에게 남북정치지도자간의 정치협상 제의서한 발송

1948.02.26. 유엔, 소총회를 열어 '유엔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안' 통과

1948.03. 유엔한국임시위원단 김원봉과 면담

1948.03.12. 김구·김규식·김창숙·조소앙·조성환·조완구·홍명희 7인 공동성명으로 남한총선거 불참 표명

1948.03.25. 김일성, 남북정당 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 개최 제의

1948.03.27.~03.30. 북로당 제2차 대회(2차 당대회), 당중앙위 사업총화 및 당규약 수정

1948.04.03. 제주 4.3 사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대(350명), 도내 11개 경찰서 등 습격, 김달삼 등이 5.10 총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수립 반대 등을 내세우며 무장봉기

1948.04.19.~04.23. 평양서 남·북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남북연석회의) 개최, 김구·김규식·박헌영·이극로 등 남측 대표로 참가, 김원봉은 연석회의 전체 사회를 맡음, 남북한 56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 696명 참여

1948.04.24. 스탈린, 북한의 헌법 초안을 최종 승인

1948.04.26.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등 남북지도자 제1차 비공식 회담

1948.04.29. 북조선인민회의는 소비에트헌법을 기초한 헌법초안 통과

1948.04.30.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4김 회담) 공동성명 발표

1948.05.05. 연석회의 참석자 남으로 귀환

1948.05.10. 총선반대투쟁, 선거 방해를 위한 좌익세력 공격으로 우익인사 40명 사망, 경찰지서 25개, 투표소 36개 습격

1948.05.14. 5.14 단전, 북한은 남한에 정치적 불만을 품고 전력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

1948.05.16. 민중동맹·과학기술연맹·민족해방청년동맹·獨勞黨·자주여맹·문화단체총연맹·문학가동맹 등 단선무효 성명

1948.05.19. 남로당 단선무효 선언

1948.06.18. 제주도 진압군 연대장 이진경 대령 피살

1948.07.09. 민족자주연맹에서 통일독립촉진회 제1차 발기준비위원회 개최

1948.07.13. 중국 총영사 류위완과 김구의 대화, "북한이 이미 남한이 상대하기 힘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여 남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1948.07.21. 통일독립촉진회 결성, 김구·김규식은 남북 총선거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요구

1949.0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임시정부를 해산하고 독립국가를 건국

1949.08.21.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개최, 모든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 등 대의원 360명 선출

1949.08.21.~08.26. 김달삼은 황해도 해주에서 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여 제주 4.3투쟁에 관한 보고 ▷김달삼은 강동정치학원에서 유격대훈련을 받은 후 유격대원 300명을 이끌고 일월산 이대 침투

1949.08.25. 북조선인민위원회 최고인민회의 구성, 남북대표 대의원 572명 선출

1949.09.02. 조선최고인민회의 소집, 북한 헌법 채택 및 선포, 인민공화국의 주권은 인민에 있으며 인민의 자유와 권리는 보장된다? ▷최고인민회의 의장에 허헌 선출(9월), 병사(1951년), 애국렬사릉 안장(1951.09.07)

1949.09.0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 내각 수상 김일성·부수상 겸 외상 박헌영·부수상 홍명희·국가검열상 김원봉·농림상 박문규·사법상 이승엽·노동상 허성택·보건상 이병남을 임명

1949.09.19. 소련, 북한에서 철병 성명

1949.09.20. 미국, 남한에서 당분간 철병않겠다고 성명

1949.10.19.~10.27. 여수순천반란 사건, 여수 국군 제14연대 반란(2천명), 우익인사와 가족들 처형

1949.10.28. 여순지구에 계엄령 선포

1949.11. 미군철수 규탄 성명에 참여

1949.11. 조선의용군은 중국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이 되었다고 인민군 제6사단으로 편제되다

1949.11.02. 대구주둔 제6연대 반란사건, 연대본부에 침투한 죄익계 하사관들이 반란

1949.11.03. 金九, 미소양군 철퇴후 통일정부 수립 요지의 담화 발표

1949.12.01. 사회당(社會黨) 창당, 조소앙 중심으로 창당

1949.12.01. 국가보안법 제정, 여순반란사건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1949년에 11만 명이상 체포

1949.01.20.~07.30. 숙군사업 실시, 백선엽 정보국장은 특별수사과를 설치하고 군 내부에 침투한 남로당 세력을 제거

1949.05.04. 춘천 지역 제 8연대 예하의 2개 대대제6사단 8연대 2개 대대 750명이 집단으로 월북

1949.05.20.~08.16. 국회 프락치 사건, 제헌국회에 침투한 남로당 프락치(공작원) 현역 국회의원 10여 명을 검거

1949.06.05. 국민보도연맹 조직, 좌익 계약 전향자로 구성됐던 반공단체 조직

1949.06.26. 김구 피살, 안두희 소위가 경교장에서 저격

1949.06.30. 미군 남한 철수, 미국은 군사고문단 500여명의 병력만 남기고 철수

1949.06.30. 조선노동당 창립, 남북노동당 합당, 노동당 위원장에 김일성, 부위원장에 박헌영·허가이

1949.07. 중국 인민해방군 166사단(1만321명), 164사단(1만821명)은 북한으로 이동해 인민군 6사단과 5사단으로 개편

1949.07.06. 약 200명의 유격대가 오대산까지 침투, 대부분 사살

1949.07.30. 숙군사업 완결, 군 내부에 침투한 남로당 세력 제거,전체 5% 좌익(4,749명 숙청)

1949.08.04. 김달삼은 유격대 약 300명을 이끌고 경북 영양의 일월산으로 침투하나 대부분 토벌 ▷인민유격대 태백산 지구 김달삼부대를 이끌고 영양과 영덕 일대에서 활동 ▷강원도 정선군 지경리에서 국군 제185부대와 전투끝에 사망(1950.03.20)

1949.08.12. 철원지구 유격대가 선발대 15명을 용문산까지 남파, 실패하고 월북 도주

1949.08.15. 철원지구 본대 40여 명이 용문산까지 침투, 20여 명 사살, 나머지는 월북 도주

1949.08.17. 인민유격대 제1군단 약 360명을 태백산으로 남파, 대부분 토벌, 100여 명 도주

1949.09.14. 목포형무소 집단탈옥사건, 제주 4.3사건 관련 죄수 413명이 탈출하여 298명이 사살

1949.09.28. 인민유격대 50여 명이 양양군 금옥치리로 침투, 국군 8사단에 의해 섬멸

1949.10.01.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마오쩌둥 초대 국가주석, 마르크스-레닌주의

1949.10.04. 정부, 서울주재 소련영사관원 니콜라이 추방

1949.10.19. 정부는 남로당 등 민전 산하 133개 좌익 정당 및 단체의 등록을 취소

1949.11.06. 인민유격대 100여 명이 영일군 지경리로 해상 침투, 보현산 김달삼 부대와 합류

1949.12.15.~12.18. 노동당 중앙위 5차 전원회의, 종파주의 반대 및 당의 통일단결 강화

1950.01.12. 애치슨라인 발표, 미국무부 장관은 미국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

1950.01.17. 김일성, 스탈린에게 38선을 돌파하겠다는 남침 계획을 건의

1950.01.26.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 체결

1950.03.27. 남로당 총책 김삼룡 이주하를 검거하다, 북한은 조만식과 교환을 제의했으나 이승만의 교환조건을 거부

1950.03.28. 김상호와 김무현 부대 약 700명이 오대산과 방대산으로 침투, 토벌대가 소탕

1950.03.30. 김일성, 스탈린과 모스크바 극비회담,서울만 점령하면 남로당 20만 지하당원 봉기

1950.04. 인민해방군 독립 15사단(1만4000명)은 인민군 12사단으로 개편

1950.04.05. 김일성과 박헌영은 비밀리에 모스크바에 방문하여 스탈린과 남침을 협의

1950.04.30. 소련 스탈린 대남공격 승인, 모택동 승인(5.13.)

1950.05.15. 성시백은 신문사를 경영하며 취재를 이유로 정부와 군기관의 기밀정보를 북한에 넘기는 등 간첩혐의로 체포

1950.05.29. 북한은 8월 15일까지 서울에 통일 인민정부 수립을 목표로 남침 공격의 작전계획을 완성

1950.06.22. 북한은 각 사단장 앞으로 남침 전투명령 1호 하달

1950.06.25. 한국전쟁, 국군 6만5천여 명, 북한군 13만5천여명 탱크240여대, 폭격기200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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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1.10. 조선인민유격대 독립4지대(남부군) 개편, 총사령관 이현상 임명 ▷총상을 입고 사망(1953.09.17)

1953.07.27. 한국휴전협정, 유엔군 ∙ 조선인민군 ∙ 중국인민지원군 간에 정전협정 체결

1953.07.30. 리승엽 등 남로당계 12명을 미국 스파이 혐의로 기소, 1954년7월30일.처형 

1953.08.03. 남로당 세력은 평양에서 열린 최고재판소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

1955.12.15. 박헌영은 미제 간첩 혐의로 재판받고 사형 선고, 1956년12월5일.총살

1955.12.28. 김일성, 노동당 선전선동일꾼대회에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 발표, '주체' 용어 처음 사용

1956.04.23. 북한 노동당 규약 제1조 개정, 맑스-레닌주의를 당 활동의 최고지침으로 제시(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

1956.07.19. 북한, 연안파 숙청

1956.08.30. 8월 종파사건, 노동당 중앙위 8월 전원회의에서 연안파 최창익과 소련파 박창옥 등이 김일성을 정면으로 비판

1956.11.10. 진보당 창당, 위원장 조봉암, 1958년2월25일.해산

1957.01.04. 중앙당 집중지도(반당·반혁명분자 숙청사업) 본격화

1957.12.16. 김일성 국적과 당적 정리, 소련군 현역 장교 & 소련공산단(볼셰비키) 하급당원

1958.01.12. 진보당 사건, 조봉암을 간첩죄로 기소, 사형(1959.07.31) ▷김일성은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 때 무소속 조봉암에 대선 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힘(봉인 풀린 구소련 극비문서)

1958.03.03.~03.06. 제1차 당대표자회, 종파주의 청산하고 당의 통일단결 강화 강조

1958.03.04. 연안파 최창익·서휘 등 숙청

1958.05.30. 노동당 중앙위 상무위원회,'반당·반혁명분자와의 투쟁을 전당.전인민적으로 전개할데 대하여" 결정(5.30결정) 채택

1958.10.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해임, 모든 정치적 지위 상실

1958.11. 김원봉은 중국 국민당 스파이 죄목으로 숙청

1959.03.21.~03.23. 노동당 함경북도위원회 확대전원회의, 지방주의·가족주의 청산 강조

1959.12.14. 북송사업 시작, 재일교포 975명을 태운 북송선이 일본 니가타항을 출발,

1984년까지 25년간 180차례에 걸처 9만3000여명이 북송됨

1960.11.19. 북한, 남북연방체구성과 경제·문화교류를 위한 경제위원회구성 제의

1960.12.06. 사회대중당, 민주적 평화적 조국통일촉진방안 발표

1960.02.28. 대구학생시위,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이 "독재정치, 부정부패 척결" 도심 시위

1960.04.19. 4.19 의거, 서울시내 대학생·고등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하여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전개 

1960.04.25. 전국 대학교수단 258명이 시국 수습을 위한 14개항 시국선언문 발표하고 시위에 참가 

1960.04.25. 서울 각 대학 교수단 4백여 명이 국회 앞 시국선언문 발표, 대통령·국회의원·대법관 등 사퇴 요구 

1960.05.13. 사회대중당 창당, 구진보당계·민족자주연맹·민주사회당계 등의 계열이 결집하여 4.19혁명 이후 사회 전면에 나옴, 1961년5월22일.5.16군사정변 직후 정당 해산

1961.01.21. 민족 자주 통일 중앙 협의회(민자통) 결성하고 통일운동을 주도

1961.05.03. 서울대 민족통일연맹(민통련)은 판문점에서 남북학생회담을 북한에 제의

1961.05.05. 통일운동을 위해 전국 대학생들이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민통련)을 결성

1961.05.13. 민통련은 학생들이 제기한 남북 학생 회담을 지지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결성하고 초대 위원장에 홍명희를 선임

1961.05.16. 5.16 군사혁명,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권을 장악하고 쿠데타의 성공과 혁명공약을 발표

1961.07.22. 김정일,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재학 중 노동당 입당

1961.08.29.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결성

1964.06.19. 김정일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당무 시작

1964.08.14.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대규모 지하조직이 국가전복을 기도, 언론인.학생 41명 검거, 사건 관련자 일본으로 밀항 후 월북

1966.10.05.~10.12. 제2차 당대표자회, 경제.국방 병진노선 천명

1966.10.12. 노동당 중앙위 제4기 14차 전원회의, 노동당 중앙위 위원장 및 부위원장 제 폐지, 총비서 및 비서제 신설, 김일성 노동당 총비서 선출

1967.05.04.~05.08. 노동당 중앙위 제4기 15차전원회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내각 부수상 박금철과 대남비서 이효순 등 `갑산파' 숙청, 김일성 1인지배체제인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

1967.07.08. 동백림간첩단사건, 독일과 프랑스 유학생과 교민 등 대남적화활동으로 사형 2명·무기징역 1명·징역10년이상 6명, 윤이상·이응노·천상병 등

1968.08.24.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받고 결성된 지하혁명 조직으로 158명 검거·사형 5명·무기징역 4명·유기징역 21명, 김종태(영웅칭호)·신영복

1969.01.06. 인민군 당위원회 제4기 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민족보위상 김창봉과 전 인민군 총정치국장 허봉학 등 군 고위층 10여명 숙청

1970.11.02.~11.13. 노동당 제5차 대회(5차 당대회), 인민경제 6개년계획(1971∼1976년) 수립

1970.11.13.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

1970.11.13.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표방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1970.11.21. 연세대생들이 전태일 사망을 애도하며 근로조건 개선 등 5개항의 시국선언문 채택

1971.05.13. 통혁당 재건기도 간첩단 11명 검거

1972.12.27. 북한 헌법 개정, 국가주석제 도입, 김일성 체제 독재 강화, 당 규약이 상위임

1973.08.08.~08.13. 김대중 납치사건,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도쿄의 호텔에서 납치, 가택연금

1973.09.17. 노동당 중앙위 제5기 7차전원회의, 김정일 당중앙위 조직.선전비서 겸 조 직부장 기용

1973.10.25. 중앙정보부, 유럽거점 대규모간첩단 적발 발표

1974.02.13. 노동당 중앙위 제5기 8차 전원회의, 김정일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으로 피 선, 후계자로 내정

1974.02.19. 김정일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선포

1974.04.03. 민청학련 사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중심 민중봉기 획책, 180명 구속·사형 7명·무기징역 4명·유기징역 7명, 유인태·이철·서경석·김지하·유근일·김지하·장기표·윤보선·함석헌·장준하·백기완·김동길·백낙청 등

1974.04.14. 김정일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 발표

1974.04.25. 제2차 인혁당 사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 주축의 불순 반정부 세력으로 규정, 1024명 체포·사형 7명·무기징역 7명·징역20년 12명 등

1974.08.15.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육영수 여사 서거), 광복절 기념식장

1974.09.24.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출범, 인권 회복과 민주 회복을 위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 발족. 제1차 시국선언 발표

1974.12.11. 노동당 중앙위 제6기 15차 전원회의, 총리 이근모 해임, 후임에 당비서 연형묵 기용

1975.01.01. 김정일 `전군 주체사상화' 선포

1976.10.12. 노동당 중앙위 제5기 12차전원회의, 알곡 1천만t고지 점령 제시

1977.09.05.~09.07. 노동당 중앙위 제5기 14차전원회의,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 발표

1974.12.12. 노동당 중앙위 비서국 회의, `건군절'을 2월8일서 4월25일로 변경

1979.10.09.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1979.10.16.~10.20. 부마사태, 부산대 학생들의 유신체제 반대 시위, 유신철폐·독재타도

1979 10.26. 10.26사태, 박정희 대통령 서거, 주한미군 全부대에 특별경계체제 돌입

1979.12.12. 12·12사태,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반란

1980.04.21.~04.24. 사북 광부 유혈 폭동, 강원 정선군 사북읍 광부 700여명이 임금인상·어용노조에 불만 유혈폭동

1980.04.29. 부산소재 동국제강 종업원 1천여 명이 임금·상여금 인상요구하며 방화·파괴

1980.05.02. 서울대생 1만여명, '민주화대총회' 개최, 계엄령 해제 요구

1980.05.05. 노동청, 금년 노사분규 8백9건 발생, 그중 1백74건이 진행 중이라고 발표

1980.05.13. 시내 6개 대학 2천5백여명, 광화문 일대에서 '계엄철폐' 외치며 가두시위

1980.05.14.~15. 30개 대학 10만여명,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

1980.05.16. 전남대 등 광주지역 9개 대학연합 1만여 명이 가두 성토 대회를 가지고 시국선언문을 발표

1980.05.18.~05.27. 광주사태, 光州학생·시민 대규모데모; 계엄군 무력으로 진압

1980.10.10.~10.14. 노동당 제6차 대회(6차 당대회),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인하고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 천명, 김정일 당 정치국 상무위원 및 당중앙 군사 위 위원과 당중앙위 조직.선전비서로 선출, 김일성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1980.10.10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당의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명문화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공산주의 사회건설'을 당의 최종목표로 내세움('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

1980.12.11. 무림사건,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 배포한 10명 구속

1981.03.03. 정부, 光州·釜馬사태 및 民靑學聯사건과 朴大統領시해사건 관련자 등 5천221명 사면·복권·감형

1981.07.07. 부림사건, 불온 서적 읽었다는 부산지역 대학생 21명 구속

1981.07.23. 학림사건, 전민학련과 전민노련을 통해 노동자와 학생 연대투쟁 시도

1982.03.18.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급진 좌익 학생들의 반제·민중·민족운동의 출발

1983.06.02.~06.12. 김정일 노동당 조직비서 자격으로 중국 비공식 방문

1983.09.18. 대구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발생

1983.09.30.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

1984.05.18.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발족

1984.09.17. 서울대 학원 프락치 사건, 복학생 유시민과 백태웅 학도호국단장 등 구속

1984.11.14. 민정당 중앙당사 점거 농성, 김영춘 고대 학생회장 등 19명 구속

1984.11.20. 서울 6개 대학 학생 1천여 명: 高大서 ‘전국대학생총연맹’ 결성

1985.03.29.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결성

1985.05.23.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1985.06.24. 구로동맹파업, 구로지역 노조연대파업

1985.07.20. 민주화추진위원회(일명 깃발)사건

1986.02.21.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박원순. 원경 스님, 역사인식의 심화와 대중화?

1986.06.02. 서울대 등 23개 대학 교수 265명이 정통성을 지닌 민간정부의 출현을 바라는 시국선언문 발표

1987.06.10.~06.29. 6월 민주항쟁, 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하는 대규모 시위, 일반시민 대거참여

1988.02.20. 당중앙위 정치국회의, 정권수립 40주년 즈음 `200일 전투' 호소

1988.05.2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1988.09.03. 한국역사연구회 창립, 우리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기여?

1989.03.25.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1989.06.30. 임수경 평양축전 참가 사건

1989.11.09. 동서독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 붕괴

1988.11.12. 역사학연구소 창립, 민중 주체 관점에서 역사를 과학적 연구?

1988.11.26. 전국언론노조 창립, 초대위원장 권영길, 41개 언론사 노조 참여

1989.01.09.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일본 일왕 히로히토 분향소 조문

1989.01.21.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창립대회

1989.05.28. 전교조 결성,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를 모체로 연세대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결성 

1989.06.07.~06.09. 노동당 중앙위 제6기 16차 전원회의, 경공업발전 3개년계획 수립

1989.07.09. 전교조는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부당징계 철회 및 전교조 합법성 쟁취 범국민결의대회를 개최 

1989.07.12. 전국 298개 학교 노동조합 가입 교사들이 단식 수업 및 농성 돌입 

1989.11.12.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 공개, 백태웅·은수미·조국

1990.04.24.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농민의 권익 보호와 민족 자주적 경제건설 목적

1990.05.07. 장을병 교수 등 57개 대학 교수 1,041명이 민자당 해체와 토지공개념 촉구하는 시국선언 발표

1990.08.08. 소설가 황석영(黃晳暎), 범민족대회남측추진본부 대표자격으로 평양 도착.

1990.09.28. 조선노동당과 일본 자민당 및 사회당 3당 공동선언 발표(평양)

1990.11.16. 여성단체 중심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

1991.04.26.~06.29. 5월투쟁

1991.12.24. 노동당 중앙위 제6기 19차 전원회의,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1992.01.08. 정대협,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 시작 >위안부 소녀상 건립, 수요집회 1천회 기념(2011.12.14) >정의기억연대 출범(2018.07.11)

1992.02.07. 통합민중당 창당

1992.12.10. 노동당 중앙위 제6기 20차 전원회의, 총리 연형묵 해임, 후임에 당비서 강성산 기용

1993.03.10.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북송 결정

1993.12.08. 노동당 중앙위 제6기 21차 전원회의. 제3차 7개년계획 실패 시인

1994.07.08. 노동당 총비서 김일성 주석 사망

1995.03.30. 조선노동당과 일본 연립3여당(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 북.일 회담 재개 위한 합의서 채택(평양)

1995.11.1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노동조합의 상급단체

1997.02.12. 황장엽 노동당 중앙위 비서 망명

1997.10.08. 당중앙위와 당중앙군사위 명의 특별보도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 공식 선포

1998.06.09. 김대중, UN인권협회 UN인권상 수상

1998.09.05. 김정일, 핵무장 강성대국 선언

1999.05.14. 전국 대학교수 536명은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노동자 참여 및 고용보장 요구 시국선언 

2000.01.19. 여성부 신설

2000.01.30. 민주노동당 창당, 민주노총 세력 기반으로 PD(People's Democracy,민중민주)계열

2000.05.29.~05.31. 김정일 당총비서 자격으로 중국 비공식 방문, 장쩌민과 정상회담

2000.06.15. 6.15 남북 공동선언, 자주 통일.낮은 단계 연방제.경제협력 등

2000.09.02. 정부, 비전향 장기수 63명 판문점 통해 북송

2000.10.14.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2001.01.15.~01.20. 김정일 당총비서 자격으로 중국 비공식 방문

2002.12.04. 주권회복의 날 10만 범국민 평화대행진,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 문정현.한상열.고은.조정래.최종원.박재동 등

2002.12.12. 북한, 핵 동결 해제 발표

2003.03.03. 전교조는 NEIS 반대 인권위 사무실 농성 돌입

2004.04.18.~04.21.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자격으로 중국 비공식 방문, 후진타오와 회담

2005.05.31.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정

2005.09.01. 노동당 창건 60돌 및 광복 60돌 맞아 대사면 실시

2007.01.23. 인민혁명당 사건, 대법원 무죄 선고

2007.03.28. 한미FTA 저지 촛불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대규모 촛불집회 

2008.03.16. 진보신당 창당, 공동대표 노회찬·심상정

2008.04.29.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방송

2008.05.02. 광우병 촛불집회, 기간(~08.15.) MBC PD수첩 '광우병 소' 관련 보도를 계기로 광화문에서 촛불집회 개최, 좌파 언론인·지식인·정치인·종교인·민조총·전교조·시민단체·연예인 참여

2008.05.06. 광우병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 결성, 한국진보연대(대표 오종렬, 한상렬)'가 조직

2008.05.09. 촛불집회 전국 확산,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전국으로 확산 

2008.06.05. 국민대책회의 촛불집회, 국민대책회의는 72시간 연속 촛불집회 개최, 경찰추산 12만명 참가 

2008.06.30.~07.06.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서울광장 시국미사, 국민승리 선언

2008.12.26. 전국언론노동조합, 정부 여당의 방송관계법 개정을 막기 위하여 언론 총파업에 돌입

2009.05.22.~08.06. 쌍용차 사태, 구조조정 반대 및 해고자 복귀, 노조원 64명 구속

2009.11.08.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발간

2010.03.26. 천안함 피격사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잠수정 어뢰공격으로 초계함이 침몰하여 해군 46명이 전사

2010.09.28. 당대표자회 개최, 김정은 인인군 대장 및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임명, 후계구도 공식화

2010.11.23. 연평도 포격사건, 해안포와 방사포 170여발 포격, 민간인 2명 사망. 52명 부상, 군인 2명 전사. 16명 부상

2010.12.28.~2011.11.10. 한진중공업 사태, 조선 부문의 정리해고 반대, 희망버스와 크레인 농성

2011.07.08. 왕재산 간첩단 사건,지하혁명조직을 결성,북한에 국내 정세를 보고

2011.08.06.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위, 평통사·참여연대·천주교정구사·민노총·전국농민회·민노당 제주도당 등 참여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 촉구(연합뉴스)

2011.12.06. 통합진보당 출범, 민노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 합당

2012.05.02. 야당인사 촛불집회 참석, 문성근·정청래·정동영·정봉주·참여연대·통합진보당·언론노조 등

2012.05.12.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국민촛불집회,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 등 참석

2013.12.10. 고려대학교 학생이 안암동 정경대 후문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제목의 대자보 

2014.02.08.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개입 규탄 촛불집회 

2014.03.08. 서울 청계광장에서 280여개 단체가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개최

2014.04.16. 세월호 침몰사고,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 사망자 295명

2014.05.24.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 개최, 경찰 추산 8천여 명 참가

2014.08.30. 전교조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

2014.11.21. 도서정가제 시행, 책 할인율 최대 15%로 제한

2014.12.19.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정부에 의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2015.10.19. 시민사회 원로 600명 등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 

2015.10.23. 전교조 250여 명이 서울 도심에서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

2015.10.24.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대하여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통보

2015.10.29. 전교조 교사 2만1천여 명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 발표 

2015.11.20. 전교조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발해 연가투쟁에 돌입, 교육부는 강경 대응 방침 천명

2015.12.16. 전교조는 한국사 국정화 반대 2차 시국선언, 교사 1만6천 명 참여

2016.07.10. 경북 칠곡에서 주민 3천500여 명이 모여 사드 배치 반대 궐기대회 개최

2016.07.13. 사드반대 시위, 민주노총·원불교

2016.08.14. 진보단체는 서울 도심에서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 개최…4천700여 명 참가

2016.10.29. 대통령하야 1차 촛불집회,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 개최

2016.11.05. 대통령하야 2차 촛불집회, 서울·광주·제주 등 전국 도시에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 개최 

2016.11.07. 서울대 교수 728명이 대통령 퇴진 촉구 시국선언

2016.11.08. 1천500여 시민단체,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발족

2016.11.12. 대통령퇴진 3차 촛불집회,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서울광장에서 대통령퇴진 민중총궐기 집회 개최, 주최측 100만 명·경찰 측 26만 명

2016.11.14.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138명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 발표

2016.11.19. 대통령퇴진 4차 촛불집회, 전국 주요 도시서 주말 촛불 집회 개최, 서울 경찰 추산 13만5천 명 참가

2016.11.26. 대통령퇴진 5차 촛불집회, 전국에서 촛불집회 개최, 경찰 추산 33만, 청와대 앞 200미터 진출 

2016.12.03. 대통령퇴진 6차 촛불집회, 서울에서 160만 명 참가, 청와대 앞 100미터 행진 허용

2016.12.09.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300명 중 234명 찬성, 대통령 직무권한 정지

2016.12.10. 대통령퇴진 7차 촛불집회, 전국에서 촛불집회 개최, 총 104만 명 참가 

2016.12.17. 대통령퇴진 8차 촛불집회, 광화문에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개최, 65만 명 참가 

2016.12.24. 대통령퇴진 9차 촛불집회, 전국에서 촛불집회 개최, 70만여 명 참가 

2016.12.31. 대통령퇴진 10차 촛불집회, 전국에서 촛불집회 개최, 110만여 명 참가

2017.01.21. 대통령퇴진 13차 촛불집회, 전국에서 35만여 명 참가  

2017.02.04. 대통령퇴진 14차 촛불집회, 전국에서 42만여 명 참가 

2017.02.10. 대통령퇴진 15차 촛불집회, 광화문에서 주말 촛불집회 개최, 80만6천여 명 참가  

2017.02.18. 대통령퇴진 16차 촛불집회, 광화문에서 주말 촛불집회 개최, 70만여 명 참가 

2017.03.04. 대통령퇴진 19차 촛불집회, 전국에서 주말 촛불집회 개최 

2017.03.31. 박근혜 전대통령 구속, 뇌물수수 등 14개 범죄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2021년12월31일.사면 

2017.05.12. 국정교과서 폐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업무 지시

2017.12.23. 광화문광장에 5천명 모여 '한반도 전쟁 반대' 평화 선언

2018.07.10. 국방부, 해안.강가 경계철책 170km 철거 발표

2018.08.17. 국방부, 해안.강가 경계철책 170km 철거 발표

2018.09.10.~ 대전차 방호벽 철거, 경기도 내 방호시설 160개

2018.09.19. 평양 9.19 군사합의, 남북간 지상·해상·공중 적대행위 중지

2018.10.01. 비무장지대 일부 지역 지뢰제거 작업, 합동 유해발굴 작업 실시

2018.11.01. 남북, 지상·해상·공중에서 적대행위 중지

2018.11.20. 철원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 GP 10개 철거

2018.11.30. 제20,26,30기계화 보병사단, 제23, 28보병사단 해체

2019.05.25. 전교조 5천여명이 법외노조 취소를 요구하는 대규모 교사대회 개최

2020.09.03.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위법' 원심 파기환송, 7년 만에 전교조 합법화

2021.12.26. 더불어민주당 창당,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합당하여 더불어민주당 창당

 

▒ 좌파세력의 계파

좌파세력은 ①북한노선을 추종하고 있는 NL주사파 ②맑스레닌노선을 추종하는 PDR파 ③트로츠키노선을 추종하는 트로츠키파 ④ NL-PD의 혼합체인 21C파 ⑤기타 소 분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 NL주사파 -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에 입각하여 남한혁명을 성취하려는 세력으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한다. <한총련 집행부><범청학련 남측본부><한대련><범민련 남측본부><615공동선언실천><실천연대><평통사><한국청년단체연합><한국진보연대> 등

2) PDR파 - 민중민주주의혁명(People's Democracy Revolution)론에 의해 한국을 사회주의화하려는 세력으로 학원계와 노동계, 문화예술계, 학계 등에 포진해 있다. <노동자의 힘><한노정연><학생행동연대><인학련><대학생사람연대> 등

3) 트로츠키파 - 러시아 공산혁명가인 트로츠키의 혁명노선에 입각하여 한국혁명을 획책하는 세력으로 국제사회주의 혁명만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주장한다. <국제사회주의자들><사학련><사노련><다함께> 등

4) 21세기파 - NL와 PD의 대립구도에 염증을 느낀 세력들이 '인간적 민주적 사회주의 실현'을 기치로 형성된 학생운동그룹으로 맑스주의에 가반을 두고 있다. <21C 진보학생연합>

 

▼출처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북에 가서 6.25 남침의 주력부대가 되었다, 2019.06.14

@한국 진보세력 연구 | 남시욱 저, 청미디어, 2018

@펜앤드마이크 | 스티코프 일기로 본 북한역사

@블루투데이 | 한국좌파운동의 역사, 2012.09.02

@뉴데일리 | 모두 소련지시-소련자금이었다, 총파업-대구폭동진실, 2011.06.02

@논문 | 6.25전쟁 발발 전후 북한 게릴라의 활동과 성격,양영조, 2010

@한국일보 | 야산대와 빨치산, 2000.06.12

@중앙일보 | 스티코프비망록-1.일지, 1995.05.09

@붉은 항일 | 황대일 저, 기파랑,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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