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다시 한 번 그 역사에 얽매이게 된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기념관 입구에 적힌 글>
※년월일은 음력기준임
1419.06.19. 대마도 정벌(~07.03) 이종무는 함선 227척과 병력 1만7천285명으로 정벌군을 편성
대마도 도주, 조선과 무역을 요청
1426. 삼포 개항, 조선 정부는 남해안의 부산포, 제포, 염포 등 3포를 열어 왜인 60명 거주 허락하다
1510.04.04. 삼포왜란(~04.19) 삼포 거주 왜인들이 무역량 증대를 요구하면 반란, 병선 100척, 왜구 4~5천명이 성을 공격, 군사.백성 272명 사망, 삼포 폐쇄, 대마도와 통교 단절
1510. 비변사 설치(~1865.04.23) 임시 비상 대책기구로 삼포왜란 후 상설화됨
1512. 임신약조, 조선과 대마도주간 약조, 제포 개항, 세견선 25척. 세사미두 100석 제한
1522~1523. 왜구, 전라도와 황해도에 왜선 10여척으로 침입
1544.04. 사량왜변, 화포로 무장한 왜선 20여척이 통영 사량진에 침입
1547.02.13. 정미약조 체결, 일본의 간청으로 국교를 재개하다
1555.05.11. 을묘왜변(~06.27) 왜선 70여척이 해남 달랑포 침입하여 10진이 함락되었으나 후원군이 도착하여 왜구를 격파하다
1555.09.16. 판옥선 건조, 명종이 건조한 배를 보기위해 한강이 보이는 망원정에 오르다
1582.06.06. 토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전국 시대 통일
1590.03.06. 조선통신사 파견, 일본의 조선침공 탐지를 위해 서인 정사 황윤길과 동인 부사 김성일을 파견하다
1591.01.28. 통신사 귀환, 부사 김성일은 침략의 징조가 없다고 보고
1591.02.13. 이순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부임하자마자 거북선 건조 시작, 고려말에 존재했던 거북선을 이순신에 의해 재탄생
1592.03.27. 거북선에서 대포를 시험
1592.04.12. 거북선에서 지자포와 현자포를 시험
1592.04.13. 거북선에서 각종 총통을 시험
1592.04.13.~1598.12. 조일전쟁
1592.04.13. 임진왜란, 고니시의 제1군 18,700명, 수송선단 700여척 부산 앞바다에 출현
1592.04.13.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왜군 제1군이 절영도에 상륙, 임진왜란 시작
1592.04.14. 부산진 전투, 부산첨사 정발과 2천여 방어군 전사
1592.04.15. 동래성 전투, 고니시군 공격으로 동래부사 송상현과 방어군 3천여 명 패배
1592.04.20. 제2진 가토 기요마사군 22,800명 부산 상륙
1592.04.21. 제3진 구로다 나가마사의 11,000명 부산에 상륙, 경주성 함락
1592.04.22. 곽제우 장군, 의령에서 의병 봉기, 의병 2000명과 게릴라 활동 전개
1592.04.25. 상주 전투, 순변사 이일이 패배하여 충주로 후퇴
1592.04.28. 탄금대 전투, 고니시군의 조총 공격으로 신립장군의 부대가 궤멸, 신립은 자결
1592.04.29. 충주성 함락
1592.04.29. 선조, 광해군(光海君)을 세자로 책봉
1592.04.30. 선조 파천(播遷), 개성-평양-의주로 도망
1592.05.03. 한양 함락, 고니시군은 한성에 무혈입성
1592.05.07. 옥포해전, 이순신과 원균 연합함대는 포구에 정박중인 왜선 24척 격침
1592.05.07. 합포해전, 연합함대 포구에 정박한 왜선 4척 격파
1592.05.08. 적진포해전, 이순신 함대가 포구에 정박한 왜선 11척 격파
1592.05.17. 임진강 전투, 도원수 김명원이 지휘, 임진강 방어선이 붕괴, 유극량 등 전사
1592.05.26. 정암진 전투, 곽제우 의병 50여명, 왜군 2000여명 매복 공격으로 격파
1592.05.27. 왜군은 임진강을 도하
1592.05.29. 사천해전, 이순신 함대는 사천 선장에 있던 왜군을 공격하여 적선 12척을 격파, 최초 거북선 참전, 왜군 총탄에 이순신 부상
1592.06.02. 당포해전, 전라좌수영, 경상우수영 연합함대가 당포 앞바다에서 왜선 21척을 격파
1592.06.04. 연합함대 편성, 총 51척, 전라좌수영 23척, 우수영 25척, 경상우수영 3척
1592.06.05. 당항포해전, 이순신 지휘 삼도수군 연합함대가 정박한 왜선 26척 모두 격침
1592.06.05. 용인전투(~05.06) 전국의 근왕군 50,000명이 와키자카 왜군 1600명 돌격전에 패배
1592.06.05. 고령 의병장 정인홍 부대가 낙동강변의 무계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을 기습
1592.06.07. 율포해전, 왜선 3척 나포하고 3척 격침
1592.06.10. 임진강 방어선 붕괴, 조선군 1만여명 일군의 공격으로 전멸
1592.06.13. 1차 평양성 전투(~06.14)
1592.06.14. 선조, 의주로 피난, 광해군 분조를 이끌고 출발
1592.06.15. 평양성 함락, 유키나가 왜군 평양성 무혈입성, 선조는 의주로 피난
1592.06.22. 선조, 의주 도착
1592.07.07. 진안 웅치에서 나주 판관 이복남이 전주로 침입하려는 안코쿠지 에케이의 왜군을 맞아 방어하였으나 실패
1592.07.08. 이치 전투, 광주 목사 권율의 1천여 명 조선군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왜군 2천 여명을 맞아 격퇴함. 이치 전투로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저지
1592.07.08. 한산대첩, 1592.07.08.이순신.이억기.원균의 조선 함대 72척이 한산도 견내량에서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 함대 66척을 격침, 왜군 수륙병진작전 실패
1592.07.09. 조선 연합함대가 가덕도 안골포에서 구키 요시타카, 가토오 요시아키가 지휘하는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20여 척을 격파
1592.07.09. 의병장 고경명의 전라도 의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관군이 금산성의 왜군을 공격하였으나 왜군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고경명 전사
1592.07.10. 안골포해전, 이순신 수군은 왜군 함선 42척 격침
1592.07.17. 2차 평양성 전투, 조승훈의 명군 3천과 김명원의 조선군 3천 명 연합군은 평양주둔 일군 1만5천 명에게 매복 기습에 패배, 유격장 사유 등 전사
1592.07.23. 회령까지 쫓겨간 두 왕자와 수행원들은 백성들에게 잡혀 일군에게 넘겨짐
1592.07.25. 영천읍성 전투, 후쿠시마 왜군(5) 1000명 주둔,
1592.08.01. 3차 평양성 전투, 평양 수복을 위해 순변사 이빈 등이 거느린 조선군과 의병이 단독으로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
1592.08.02. 청주 전투, 조헌의 의병·승려 영규의 승병·충청도 방어사 이옥의 관군이 연합하여 청주성의 왜군을 격파하고 청주를 탈환하다
1592.08.15. 제1차 금산전투(~08.16) 의병 고경명의 결사항쟁
1592.08.18. 제2차 금산전투, 조헌의 의병과 영규의 승병 부대가 금산의 연곤평에서 고바야카와 왜군과 결사 항쟁하여 모두 전사하다. 칠백의 총
1592.08.21. 성주성 전투, 경상도에서 조선군과 의병이 왜군이 점령한 성주성을 탈환하다
1592.08.28. 연안성 전투(~09.02) 황해도에서 초토사 이정암의 조선군이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 왜군에 승리하다
1592.08.29. 장림포 해전, 이순신⋅이억기⋅원균의 조선 수군 연합 함대는 부산포 출진 중 장림포에 주둔한 왜선 5척을 격파하다
1592.09. 강화회담 결렬
1592.09.01. 절영도 해전, 조명연합 함대가 부산포 출진 중 왜선 9척을 격파하다
1592.09.01. 초량목 해전, 조명연합 함대가 부산포 출진 중 왜선 24척을 격파하다
1592.09.01. 초토사 이정암이 황해도 연안성을 4일 동안 포위 공격하는 왜군을 격퇴하다
1592.09.01. 부산포 해전, 조선 수군 연합 함대가 부산포의 도요토미 히데카쓰(豊臣秀勝) 왜군 본진을 공격하여 1백여 척을 격침하고 녹도만호 정운鄭運 전사하다
1592.09.09. 경주성 전투, 경상좌병사 박진이 경주성의 가토 왜군을 공격하여 경주를 탈환하다, 신형 무기인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다
1592.09.16. 북관대첩(~1593.01.28) 함경도에서 의병장 정문부가 여진족과 반란군을 물리치고 함경도를 탈환하다
1592.09.16. 북평사 정문부의 부대가 경성 탈환하고 반역자 국세필 등을 처단하다
1592.10.05. 1차 전주성 전투, 진주 목사 김시민과 관군 3800명이 6일 동안 진주성을 공격하는 왜군 2.5만을 방어하여 격퇴하고 김시민 전사,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
1592.12.11. 독성산성 전투, 경기도에서 권율의 조선군이 우키다 히데이에 왜군을 물리치다
1592.12.25. 명군 참전, 총병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 5만 1천여 명과 화약무기 부대와 기마부대가 참전하다
1593.01.06. 4차 평양성 전투(01.09) 이여송의 명나라 군과 김명원의 조선군 연합군이 평양성의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을 공격하여 평양 탈환, 서산대사⋅사명대사 승군 2200 명 합세, 조일 전쟁의 전환점
1593.01.06. 이여송의 명나라 군과 김명원의 조선군 연합군이 평양성의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을 공격하여 평양 탈환
1593.01.19. 조명연합군 개성에 진출
1593.01.27. 벽제관 전투, 이여송이 고양 벽제관 근처에서 왜군의 기습으로 패배하고 파주로 퇴각, 명군 1500명 전사하고 이여송과 명군은 평양성으로 후퇴
1593.02.10. 웅포해전, 최초의 패전, 철수 과정에서 썰물로 조선 전함끼리 충돌로 2척 침몰
1593.02.12. 행주대첩, 행주산성에서 전라 감사 권율이 거느린 2천3백 여명과 의병 6천 여명이 우키다 히데이에 왜군 3만 여명을 대파하다. 변이중이 제작한 화차가 큰 역할을 하다.
1593.02.29.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왜군이 함경도에서 한양으로 철수하다
1593.03.20. 왜군 총병력 8만명, 한양집결, 개전시 15.8만명에서 45% 손실(추가 4.3만명 제외)
1593.03.23. 선조 평양성 복귀
1593.03.25. 노원평 전투(~03.27) 한양에서 고언백 관군과 사명대사 승병이 매복하여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왜군을 섬멸하다
1593.03.29. 유성룡이 군제를 진관체제로 복구할 것을 청함
1593.03.~04. 심유경은 용산에서 고니시 유키나가 등과 협상을 벌여 일본군 철수에 합의
1593.04.08. 한양수복, 유키나가와와 유격장 심유경과 강화회담 타결, 한양 무혈 입성
1593.05.07. 이순신, 모든 수영 총집결하여 104척의 대함대를 출동했으나 전투는 없었음
1593.06.22. 제2차 진주성 전투(~06.29)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직접 명령으로 우키타 히데이가 지휘하는 왜군 9만 여명이 진주성을 공격함. 6일간의 전투 후 성이 함락되고 주민 6만 여명이 살륙됨, 조선군 5800명과 와키자카 왜군 9만3000명, 조선군 전멸
1593.08.13. 충청⋅전라⋅경상도 번상병들을 명나라 군중에 보내어 남병의 무기와 진법 등을 익히게 하다
1593.08.15.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당시 전함 총수 143척
1593.09.25. 류성룡의 건의로 동지사 허진에게 명하여 척계광의 기효신서(紀效新書) 중 왕세정이 서문을 쓴 판본을 구입하게 함, 명나라 무장 척계광이 저술한 병서
1593.10.01. 선조 한양 복귀, 훈련도감 설치, 월산대군의 옛집을 행궁으로 마련
1593.11.17. 이순신은 판옥선 189척 증강을 보고하다
1594.01.21. 한산도 본영에 전염병이 돌아 수군 274명 사망하다
1594.02.01. 훈련도감 설치, 유성룡을 도제조로 임명, 포수⋅살수⋅사수의 삼수병으로 구성, 장기간 근무하는 직업 군인
1594.03.04. 제2차 당항포해전, 이순신의 12번째 해전, 왜선 31척 침몰
1594.04.20. 전염병으로 이순신은 12일간 투병했고, 삼도수군 1만 8500명 중 5663명이 감염되어 1904명이 사망하다
1594.05.17. 낭청 한교를 기복(起復)시켜 기효신서(紀效新書)를 번역하여 편찬하게 하다
1594.09.29. 장문포해전(~10.01)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일본군은 싸움을 피하면서 퇴각함, 의병장 김덕령과 곽재우 참전
1594.10.21. 황해도 정병 4천 명을 <기효신서>의 속오법으로 편성하여 훈련하게 하다
1595.05.28. 입직 포수(砲手)로 하여금 삼안총(三眼銃)을 연습하게 하고, 살수(殺手) 훈련을 위해 <살수보> 편찬을 독촉함
1595.06.13. 훈련도감에서 <기효신서절요(紀效新書節要)> 1권 등 병서 편찬 상황을 보고함
1595.08.15. 이순신, 추석 "이 날 밤 희미한 달빛이 수루에 비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시를 읊었다."
1595.12.16. 각 지방의 병사들을 무학사목에 따라 거주지에 모여 군사 훈련을 시킬 것을 명함
1596.01. 유성룡이 <연병규식(鍊兵規式)>을 정하여 경기⋅황해⋅평안⋅함경도에 반포함
1596.07.06. 이몽학의 난,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켜 홍산현을 습격하여 점령함. 이후 청양 등 여러 고을을 점령하여 위세를 떨치다 진압됨
1596.09.02. 명 나라, 히데요시에게 명나라 신종의 고명과 국서를 전달하다
1596.12.08. 훈련도감에 명하여 불랑기(佛狼機) 등 각종 화포의 사용법을 번역하게 하고, 안변에 있는 연환(鉛丸) 10만개를 가져오게 함
1596.12.12. 부산 대화재, 도체찰사 이원익의 화공작전으로 부산포 왜군 본영에 대화재
1597.02.26. 이순신 투옥, 부산포 출전 명령거부로 한성 의금부에 투옥
1597.03. 명나라, 6만 동정군 추가 파병, 기존 2만 명 주둔에 약 8만 명 병력
1597.04.01. 이순신, 정탁⋅이원익의 구명 건의로 석방, 도원수 권율 막하에서 군사 고문직 수행
1597.07.08. 정유재란, 왜군의 침공군 주력이 6백여 척의 선단에 의하여 경상도 남해안 일대에 상륙하다. 부산 병력 2만 여명 합하여 141,400명이 침공하다
1597.07. 경상 우조방장 곽재우가 창녕의 화왕산성을 거점으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왜군 공격을 수 차례 격퇴하다
1597.07.11. 도원수 권율(합참)은 부산포 공격을 주저하는 원균(해참)을 불러다 곤장을 치다
1597.07.15. 경상우수사 배설은 12척의 판옥선을 몰고 한산도 방면으로 이탈하다
1597.07.16. 칠천량 해전, 칠천량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조선 수군이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왜군의 기습에 궤멸되고 원균⋅이억기 등이 전사하다. 조선수군은 판옥선 120척, 거북선 3척이 침몰하다
1597.08.12. 남원성전투(~08.16), 우키다 히데이에 왜군 5만8천명의 포위 공격으로 명나라와 조선군이 지키던 남원성이 함락됨. 명나라 부총병 양원은 도주하고 전라 병사 이복남 등 다수 장수가 자결함, 조명 연합군 4천명과 남원성 백성 7천명 전사, 만인의총
1597.08.16. 황석산성 전투, 경상도에서 조선군과 백성이 가토 기요마사 왜군 2만7천 여명과 항전 끝에 함락되다
1593.08.16. 왜군이 경상도 안의의 황석산성을 공격하여 성이 함락되고 현감 곽준 등이 전사하다
1597.08.20. 왜군 전주에 무혈 입성, 명나라 유격 진우층이 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다
1597.09.07. 직산전투, 경기도에서 부총병 해생의 명나라 기병 2천이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 왜군 5천 명을 격파하여 왜군의 북상이 좌절되다
1597.09.09. 세자 광해군과 왕비 일행 피란
1597.09.16. 명량해전, 명량 해협에서 이순신은 12척의 함대를 이끌고 출전, 울돌목으로 유인 133척 중 31척을 격파, 일본군의 서해 진출이 좌절
1597.12. 명나라 경리 양호가 지휘하는 조⋅명 연합군이 울산 도산성의 왜군을 수 차례 공격하였으나 실패함
1597.12.18. 전라병사 이광악이 광양성 공격, 혼전을 거듭 끝에 왜군은 왜교성으로 철수
* 왜군은 울산에서 순천에 이르는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장기 주둔태세에 들어갔다. 울산에는 가토가, 사천에는 시마즈, 순천에는 고니시, 부산에는 우키타와 모리 히데모도가 주둔
1597.12.23. 울산성 전투(~1598.01.04) 조명연합군 5만이 가토 휘하 1만3000여 왜군 공격 실패
1598.07.16. 명나라 수군 조선 파병, 도독 진린이 수군 5천 여명과 총 120여척이 고금도에 도착
1598.07.19. 절이도해전, 이순신 함대는 왜선 50여 척을 격침
1598.07.23.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조정은 병조판서 이항복의 건의에 따라 임명
1598.08.- 10월 사로병진 작전
1598.08.18.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 사망하다(실제는 07.07 사망?)
1598.09. 순천성전투(~11.) 수명수륙연합군 4만이 고니시의 왜군 1만3천을 공격, 해상으로 철군
1598.09.19. 사천성 전투(~10.01) 조명연합군 4만이 시마즈의 왜군 7천여명 공격 실패, 시마즈는 38,717개의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냄
1598.09.20. 왜교성 전투(장도 해전,~1598.10.07), 연합군 930여명 사상, 일본군 3천여명 사상, 조명 연합군 왜교성 공격 실패
1598.09.21. 명나라 동로군이 울산 도산성의 왜군을 여러 날 공격하였으나 실패
1598.09.21. 명나라 서로군이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합동으로 순천 왜교성의 왜군을 10여일 동안 공격하였으나 실패함
1598.09.28. 명나라 중로군이 사천의 왜군을 공격하여 신성으로 몰아냈으나 불랑기(佛狼機)의 오발 사고로 왜군의 역습을 받아 성주로 철수함
1598.10. 한교가 조선 최초의 무예서인 <무예제보(武藝諸譜)>를 편찬함
1598.10.01. 일본 특사, 가토⋅고니시⋅시마즈 등을 만나 철군을 지시
1598.11.19. 유성룡 실각, 삭탈관직 후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다
1598.11.19. 노량해전, 통제사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 연합 함대가 노량 앞 바다에서 왜군 선단 500척을 공격하여 2백여 척을 격파함. 이순신은 왜군의 유탄에 전사
1598.11.20. 히데요시 죽음으로 임진왜란이 종결되다
1598.12. 일본군 모두 철수
1600.09. 명나라 군대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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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키자카는 일본에서는 같은 칠본창인 후쿠시마 마사노리나 가토 기요마사에 지명도가 한참 떨어지는 장수지만 이순신 장군에게 도전장을 던졌던 용장으로 기록되었다. 전란이 끈난 뒤 와키자카는 그의 가보에 이순신 장군과의 애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내가 가장 두려운 자는 이순신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미워하는 자도 이순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도 이순신이다. 내가 가장 흠모하는 자도 이순신이다.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자도 이순신이다. 내가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자도 이순신이다."
*선조는 임진왜란 직후 "조선의 군사들이나 의병(義兵)들이 세운 공은 거의 없다. 모두가 상국(上國)인 명나라가 구원해준 덕분에 조선이 살아남았다. 재조지은(再造之恩. 위태로운 나라를 살려줌)을 잊어선 안 된다."
*납치된 도공들은 귀국 기회가 있었지만 거부했다. 조선에서 천시받던 도공들은 사무라이와 같은 계급으로 우대받았고 몇 년 만에 재산도 크게 모았다. 지역 봉건 영주들은 귀인 대접을 하며 모셔갔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도공 이삼평의 추모비와 신사까지 세워 ‘도조(陶祖)’로 추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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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전쟁 | 백지원 저, 진명출판사, 2009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 칼럼/이순신 전략과 리더십
@임진왜란 해전사 | 이민웅 저, 청어람미디어, 2004
@블로그 | 상상노트>임진왜란
@정유재란 - 칠천량 해전에서 노량 해전까지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한명기의 -420 임진왜란 | 한명기, 한겨레, 2012
@경남도청 | 총무공 이순신, 전쟁연표, http://www.gyeongnam.go.kr/yisunshin/index.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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