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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연표

역사2

by 히스토리아K 2020. 6. 2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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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부상당한 전우를 부축하는 미군병사

 

1950.06.25. 북한군 전면적인 불법남침 ▷북한군은 개성을 함락

 

1950.06.25. 춘천지구 전투(~06.30), 국군 제6사단이 춘천-홍천지역에서 북한군 2군단의 총공격을 저지

춘천지구 전투(동아일보)

1950.06.25. 미국,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

1950.06.26. 13시경 북한군은 서울의 관문인 의정부를 함락하고 서울 도심 진입을 시도

1950.06.26. 대한해협 해전, 해군의 백두산함이 부산으로 침투하던 북한군 게릴라 600명을 실은 수송선을 격침

1950.06.26. 유엔 안보리 1차 결의안, 북한군 침공 중단 및 철수요구 결의 채택

1950.06.27. 유엔 안보리 2차 결의안,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 결의 채택
1950.06.27.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 내한하여 한강방어선을 시찰하고 미국방성에 지상군 파견을 요청

1950.06.27. 미국 극동 해군·공군 참전, 3개 군단과 9개 사단 등 30만 명 병력

1950.06.28. 00:30~01:00. 북한군 탱크가 미아리 고개를 넘어 서울시내에 진입하여 서울을 점령

1950.06.28. 02:28. 국군은 북한 전차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대교(인도교)를 폭파

1950.06.28. 한강 전투(~07.03) 국군은 한강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공방전에서 한강 방어선이 붕괴

1950.06.30.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의 건의를 받아들여 2개사단과 1개 전투연대 파견을 공표


1950.07.01. 미국 지상군 참전, 오스트리아 해ㆍ공군 참전

1950.07.01. 미국 지상군 제24사단 21연대 제1대대(스미스 부대) 부산 상륙 ▷북한군이 한강도하를 개시

1950.07.02. 유엔회원국 36개국이 한국에 군사지원 성명을 발표

1950.07.07. 유엔 안보리, 유엔군 사령부 창설 결의, 유엔군총사령관에 맥아더 장군을 임명

1950.07.14. 이승만은 효율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한국군의 작전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위임

1950.07.18. 유엔군사령관, 한국군 작전지휘권 이양 수락

1950.07.19. 대전전투(~07.20)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제3, 4사단이 미8군 제24사단을 격퇴하고 대전을 함락, 윌리엄 딘 소장이 포로가 됨

국군 제1사단 지연전(중앙일보)

1950.07.24. 북한군은 대전과 광주를 점령


1950.08.03. 유엔군과 한국군은 낙동강방어선 형성, 마산-왜관-영덕을 잇는 방위선 구축


1950.08.03. 북한군, 8월 공세 개시

1950.08.03. 다부동 전투(~08.29) 국군 제1사단과 미군이 북한군 4개 사단과 전투에서 승리

8월 공세의 다부동 전투

 

1950.08.09. 기계-안강전투(~09.22) 국군 1군단 수도사단이 북한군 유격부대인 766부대로 증강된 12사단의 남진을 저지

1950.08.10. 포항 전투(~08.31) 학도병, 국군 제3사단, 민부대가 북한군 제5, 12사단과 방어전투로 포항을 탈환

1950.08.16. 왜관 융단폭격, 미국 B-29 폭격기 98대가 왜관 대안일대에 960톤의 폭탄을 집중 투하

 

1950.09.02. 영천 전투(~09.13) 국군 제8사단이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을 방어하고 북한군 15사단을 섬멸

9월 공세의 다부동 전투

 

1950.09.13. 북한군, 9월 공세 좌절 및 수세로 전환
1950.09.13. 한국군 및 유엔군, 반격준비 완료

1950.09.15. 인천상륙작전(~09.16) 맥아더 사령관 지휘로 유엔 해군 제7합동 상륙기동부대는 인천 월미도 일대에 함포사격을 실시하고 제90기동부대를 상륙시켜 인천을 방어하고 있던 북한군을 격멸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중앙일보)

1950.09.16. 낙동강전선의 유엔군도 반격하여 1주일 만에 김천, 대전, 수원으로 진격

국군과 유엔군 반격노선(아고라젠)

1950.09.17. 국군과 유엔군은 김포 비행장을 점령하고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로 진격

1950.09.28. 서울 수복,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 

1950.09.30. 이승만 대통령이 전군에 38선 돌파 명령을 하달

 

1950.10.01. 국군 제1군단이 동해안에서 38도선 돌파하면서 북진을 개시

1950.10.04. 지리산공비토벌작전(~1953.05.01) 지리산 지역의 남부군단 토벌을 위해 국군 11사단, 수도사단, 8사단, 1사단이 작전을 수행
1950.10.07. 유엔총회, 한국통일 결의안 가결

1950.10.09. 미1군단 1기병사단은 38선을 돌파해 북진작전 개시

1950.10.11. 국군1사단은 임진강을 돌파해 북진에 동참

1950.10.12. 이승만 대통령, 원산 방문하여 국군 1군단을 격려

1950.10.19. 평양탈환작전, 미군 제1기병사단과 국군 제1, 제7사단이 북한군 제17, 32사단를 격파하고 평양에 입성

1950.10.19. 중공군 20만 명이 한국전에 참전

1950.10.20. 숙천·순천 공수작전,  미187공수연대 소속 4200여 명을 투입하여 북한 수뇌부 생포에는 실패 

1950.10.24. 국군 1사단은 청천강 북안의 영변을 점령

1950.10.25. 중공군 1차 공세, 국군 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운산에서 최초로 중공군 제39군과 교전

중공군 1차 공세(중앙일보)

 

1950.10.25. 중공군 포로가 잡혀 중국의 참전이 확인됐음에도 미군 정보당국은 11월 1일에 중공군 참전을 인정
1950.10.26. 국군 6사단 압록강 도달 ▷중공군, 제1차 공세 개시 ▷미 1해병사단, 원산에 상륙

 

1950.10.26. 운산 전투(~11.04) 한국군 제1사단과 미군 제1기병사단이 구룡강 연안 운산지역 일대에서 중공군 제39군의 기습공격에 패배하고 영변과 용산동으로 철수

운산전투(동아일보)

 

1950.11.06. 청천강 북쪽과 동쪽 일대에서 맹렬하게 공격하던 중공군이 일제히 후방으로 후퇴

1950.11.06.~11.25. 모택동은 추가로 중공군 20만명을 북한에 투입
1950.11.24. 미 제8군, 종전을 위한 총공세 개시
1950.11.25. 중공군 제2차 공세, 중공군 40만 명 병력의 인해전술

 

1950.11.26. 장진호 전투(~12.13) 미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북방으로 진출하던 중, 12만 명의 중공군 제9병단의 포위공격을 받고 2주 동안에 걸쳐 장진호 협곡에서 철수

장진호 전투(ZZNZ)

 

중공군 2차 공세 북동부 전선(월드피스 자유연합)


1950.12.15. 미 제8군, 38도선에 방어선 형성

1950.12.15. 흥남철수작전(~12.24) 장진호에서 철수한 미 1해병사단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중공군 9개 사단에 큰 타격을 입히고 한·미연합군과 피란민을 부산으로 철수

1950.12.23.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 사망, 리지웨이 대장을 사령관에 임명

1950.12.24. 서울시민에게 대피령 발령, 12월말 80만명이 넘는 서울시민이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란


1951.01.01. 중공군 30여만 명의 병력으로 제3차 공세(신정 공세) 개시

1951.01.04. 1·4 후퇴,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연합군은 경기도 안성까지 후퇴

1951.01.14. 국군과 유엔군은 평택-삼척의 신방어선으로 퇴각

1951.01.15.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공군 10전투비행전대 F-51 전폭기 6대는 적의 대공포화를 뚫고 대동강 승호리 철교를 폭파

1951.01.25. 선더볼트 작전(~02.20) 경기 남부와 강원도 중부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의 대공세에 맞서 유엔군 반격 개시

 

1951.02.01. 유엔총회,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결의안 가결

1951.02.10. 제2차 인천상륙작전, 한국 해군과 해병대 170명이 인천에 상륙하여 인천시를 탈환
1951.02.11. 중공군, 4차 공세(2월 공세) 

1951.02.13. 지평리전투(~02.16) 양평에서 미 제2보병사단 제23연대 프랑스 대대가 중공군 제39군 3개 사단을 격파, 중공군의 남하를 차단함

지평리 전투(동아일보)

1951.03.13. 한국군 제1사단, 서울 탈환

1951.03.16. 유엔군이 서울을 재탈환하고 38선을 회복

 

1951.04.11.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를 전격해임하고 리지웨이 대장을 총사령관에 임명

1951.04.22. 중공군, 4월 공세 개시

중공군 4월 공세 개황도(미래한국)

1951.04.23. 가평 전투(~04.25) 영연방 27여단(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이 가평 죽둔리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


1951.05.15. 중공군, 5월 공세 개시

유엔군의 북진 상황도

 

1951.05.17. 용문산 전투(~05.21) 국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 21,450여 명을 섬멸

 

1951.05.19. 한국군 및 유엔군, 5월 공세 저지 후 전 전선 반격 개시

1951.05.26. 파로호 전투(~06.28) 화천호 일대에서 국군 6사단이 중공군 대파하고 이승만은 화천호를 "오랑캐를 대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라고 명명

 

1951.06.15. 국군과 유엔군은 문산-철원-김화-화천-간성을 잇는 전선까지 진출, 국군 6사단은 양평 용문산에서 화천까지 밀고 올라가 중국군 6만 2000명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음

1951.06.23.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는 휴전회담을 제의하나 이승만은 거부(06.25)

1951.07.10. 유엔군 및 공산군 측, 개성에서 휴전회담 개최

38선 북쪽의 주요 전투 지역(ZZNZ)

1951.08.16. 피의 능선 전투(~09.05) 강원도에서 국군과 미 2사단이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승리
1951.08.23. 군사분계선 문제로 휴전회담 중단

1951.09.13. 단장의 능선 전투(~10.13) 강원도에서 미 제2사단과 유엔군이 북한군과 중공군에 승리

1951.09.26. 한국전 최대 공중전으로 유엔 공군 101대, 미그기 155대 공중전을 전개

1951.10.03. 코만도 작전(~10.12) 캐나다군이 경기도 동두천에서 중공군 제42, 47, 65군을 섬멸
1951.10.25. 판문점에서 휴전회담 재개

1951.12.01.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 개시

 

1952.01.24. 지리산 대성골 전투, 토벌대는 300여 명을 사살하고 251명을 생포하여 경남 지역 빨치산이 전멸

1952.02.18.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좌익계 폭동으로 69명을 사살하고 미군 1명 사망
1952.05.07. 거제도 포로수용소장 납치, 감금사건 발생

1952.05.12. 유엔군 사령관 교체(신임 : 클라크 대장, 구임 : 리지웨이 대장)

1952.06.23. 수풍댐 폭격(~06.27) 유엔군 공군이 145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하여 수풍댐 시설 90%를 파괴
1952.06.29. 유엔군사령부, 억류 민간인 27,000명 석방 개시

1952.07.11. 평양대공습작전, 미 제5공군과 해군 함재기 등 822대 동원하여 평양을 공습
1952.10.06. 공산군 측, 1952년 추계 공세 개시

1952.10.06. 백마고지 전투(~10.15) 철원 북방에서 국군 제 9사단은 중공군 38군의 3개 사단을 궤멸
1952.10.08. 공산군 측, 포로송환관련 휴전회담 무기 휴회 선언

1952.10.21. 삼각고지 전투(~10.25) 미 제7보병사단 등 연합군이 철원, 김화, 평강으로 한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공군 제12, 15군단과 전투
1952.12.02. 미국 제34대 대통령 당선자(아이젠하워) 방한

1953.03.05. 소련 수상 스탈린 사망
1953.03.28. 공산군 측, 휴전회담 재개 제의
1953.04.06. 휴전회담 예비회담 개최
1953.04.20-05.03. 상병(傷病)포로 교환
1953.04.26. 휴전회담 본회담, 6개월 만에 재개
1953.06.08. 휴전회담에서 쌍방이 포로교환문제 타결
1953.06.10. 중국군, 7차 공세(6월 공세)

1953.06.18.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2만 6,930명 석방

1953.06.29. 화살머리고지 전투(~07.11) 철원에서 국군 2사단이 중공군 37사단과 전투에서 고지를 사수
1953.07.12. 한국정부, 한·미간 합의에 따라 휴전협정조건에 동의
1953.07.13. 중공군, 최후공세(7월 공세)

1953.07.13. 금성 전투(~07.20) 휴전회담이 임박한 시점에 중공군의 기습적인 총공세로 양측이 3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

1953.07.16. 한국군 제2군단, 중국군 최후공세 저지 후 반격 개시

1953.07.27.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조인으로 오전 10시 모든 전선서 전투를 중지
1953.08.05-08.06. 쌍방의 포로 교환
1953.10.01. 한·미 상호방위조약 워싱턴에서 정식 조인
1953.11.23. 중공·북한 간 경제문화협정 조인
1953.12.26. 쌍방의 송환거부포로에 대한 설득 종료

1954.02.18. 베를린 4개국 외상회의, 한국문제 정치회담 주선
1954.02.21. 포로송환위원회 해산
1954.04.26.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치회담 개막
1954.06.15. 제네바 정치회담 결렬

 

▒ 6.25 당시와 현재 남북 군사력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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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유엔군 참전 일지

6.25 한국전쟁 일지

 

▼출처

@한국국방안보포럼 | 6.25 결정적 전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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