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청일전쟁 일지

세계

by 히스토리아K 2020. 6. 21. 15:31

본문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고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군대 지원을 요청했고, 청국의 파병으로 일본도 조선에 군대를 파견(텐진조약)하면서 전쟁이 발발함

일본군은 조선과 만주, 대만 등지에서 청군과 여러 차례 전투에서 일본군이 승리함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쟁이 종결되었고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대만과 펑후제도를 일본에 할양함

 

1875.09.21.(08.22) 운요호 사건, 일본 군함이 조선 개방을 위한 강화도 무력시위로 조선군 35명 전사

일본 운요호함

1876.02.16.(01.22) 최익현의 지부상소, 최익현은 조약을 강요한 일본 사신 구로다 기요타카의 목을 베라고 고종에게 상소하나 고종은 그를 흑산도에 유배 *지부상소: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의미로 도끼를 지니고 하는 상소

1876.02.27.(02.03) 강화도 조약,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은 부산, 인천, 원산 3개 항구를 개항, 일본은 경제침략의 발판을 마련

1881.06.15.(05.19) 별기군 창설, 조선은 일본 공사의 권유에 따라 일본 교관이 훈련시키는 신식군대(80명)를 창설

 

1882.07.17.(06.05) 임오군란, 조선 병사들이 별기군과 처우에 불만을 품고 조선의 관리들과 일본 공사관을 습격

- 훈련도감의 구식 군인들이 13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고 어렵게 한달치 봉급으로 받은 쌀에는 모래가 섞임

- 구식군대 병사들이 월급을 관리하던 선혜청으로 몰려가 관리들을 폭행하면서 폭동으로 발전

- 사태가 심각해지자 군인들은 대원군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 이들은 무기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일본 공사관을 불태우고 일본 군인과 순사 등 일본인 13명을 살해

 

1882.07.24.(06.10) 구식 군병들은 대원군의 밀명에 따라 민비를 제거하기 위해 창덕궁으로 난입하였고, 민비는 궁녀로 변장해 장호원 친척집으로 피신, 대원군이 국정의 전면에 나서지만 민씨 일파는 청국에 군대 파견을 요청

1882.08.10.(06.27) 청국, 청국 제독 정여창과 마건충은 함선 3척과 병력 4~500명 병력이 제물포에 도착

1882.08.12.(06.29) 일본, 함선 4척과 1500명의 병력이 제물포항에 도착

 

1882.08.20.(07.07) 청국 수사제독 오장경이 함선 4척과 3000명의 군대가 제물포항에 도착했으나 충돌을 우려하여 남양만(경기 화성) 마산포 앞바다에 정박(07.08)

1882.08.25.(07.12) 청군은 한양에 입성하여 낙동(명동)과 용산 등지에 군대를 주둔

 

1882.08.26.(07.13) 흥선대원군 납치(~1885.10.03) 청국 마건충은 대원군을 임오군란의 주모자로 몰아 대원군을 납치하여 텐진으로 이송 ▷대원군 텐진 도착(07.19) ▷이홍장 면담(07.29) ▷하북성 보정부 관청인 청하도서에 억류(08.14)

 

위안스카이(원세계)는 임오군란때 오장경의 휘하로 들어와 조선에 잔류한 그는 고종보다 상석에 앉아 고종을 윽박지르며 조선 국왕 역할을 자임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조선의 근대화 노력도 철두철미하게 가로막았다. 대평십년 동안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은 물론 세상을 알기 위한 교육의 기회마저 주려 하지 않았다.

 

1882.08.27.(07.14) 원세계(위안스카이)는 대원군 납치를 정당화하였고 민중의 소요를 금한다는 포고문을 발표

1882.08.29.(07.16) 청군은 군병들의 집단거주지인 왕십리와 이태원을 습격하여 가담자 150여명 체포, 11명을 사형(07.23)

1882.08.30.(07.17) 제물포조약, 군란으로 사망자 위로금 오만원, 군비 오십만 원을 배상하고, 일본군의 서울 주둔을 허락

1882.09.07.(07.25) 고종은 중전 민씨가 살아 있음을 발표하는 동시에 국상을 치르기 위해 설치한 도감을 폐지

1882.09.12.(08.01) 중전 민씨는 청국 군대의 호위 속에 장호원에서 한양으로 환궁, 무당 박씨와 동행

1883.11.20. 관우사당 북관왕묘(북묘) 완공, 고종 참배, 무당 박씨를 진령군으로 부름

 

1884.12.04.(10.17) 갑신정변, 조선 한성에서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키나 청의 군대 개입으로 실패

-정동에 신축한 우정국 낙성식에서 우정국총판 홍영식의 초청으로 많는 내외 귀빈이 참석하여 축하연을 개최

-김옥균은 일본 공사관의 시마무라 서기관에게 거사를 알려 일본군 동원을 준비시키고, 서재필은 병력을 집결하여 우정국에 매복

-서재필이 지휘하는 사관 생도 13명이 민씨 척신 세력과 수구파 인사들을 살해

-민씨 세력이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지원을 약속한 일본은 군대를 철수

-개화파는 신정부의 발족을 알리고 인사를 단행하여 내각을 장악하고 14조항의 강령을 발표

 

갑신정변으로 개화파가 신정부를 수립하자 원세개는 독자적인 판단으로 개화파와 이를 지원하는 일본군을 격파하고 삼일천하에 종지부를 찍었다.

 

1885.01.09.(11.24) 한성조약, 조선은 일본에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 및 보상금을 지불

1885.04.18.(03.04) 톈진조약, 청과 일본은 조선에 출병할 경우 상호 통지할 것을 약속

1885.10.03.(08.26) 대원군 귀국, 원세개(위안스카이)가 호송, 피랍 3년 2개월만에 귀국

1887년 조르주 비고의 풍자화

1894.02.15.(01.10) 동학농민운동(~1895.03.29),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 반란이 발생 ▶동학농민운동 일지 

1894.03.04. 영구 전투, 일본 육군 1사단이 만주 잉커우 시를 공격하여 청군 1800여 명이 사상자 발생, 잉커우 입성(03.06)

1894.03.28.(02.22) 김옥균, 상하이에서 프랑스 유학생 출신의 홍종우에 의해 암살당함

1894.04.25.(03.20) 전봉준은 전라도 무장에서 1차 기병하고 창의문을 선포

1894.05.11.(04.07) 황토현 전투, 농민군이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감영군을 격파하여 조선 조정이 충격에 빠짐

1894.05.31.(04.27) 농민군 전주성 점령, 3명여 농민군이 장날 장꾼들 틈에 섞여 전주성에 들어가 순식간에 성을 점령

1894.06.02. 일본, 청의 조선 출병에 대항하여 혼성 1개 여단 파병을 결정

1894.06.03.(04.30) 조선 정부는 농민군 진압을 위해 청국에 원병을 요청

1894.06.04. 청나라 북양 통상 장관 이홍장은 조선 출병을 지령

1894.06.05. 일본, 청일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대본영(大本營) 설치(~1945.09.13)

1894.06.06.(05.02) 청군 제독 엽지초가 청군 1500명을 이끌고 인천에 도착, 청나라 군대를 2,460여 명을 조선에 파병

1894.06.07.(05.04) 청나라 조정은 텐진조약(1885)에 따라 일본 정부에 파병을 통보, 일본도 청나라에 조선 출병을 통보

1894.06.08.(05.05) 청군 선발대 910명이 충청도 아산만에 상륙

1894.06.09.(05.06) 일본군, 군함 3척에 4,500명이 인천 제물포에 상륙, 420명의 일본군이 서울로 진입

1894년 일본군 인천에 상륙

1894.06.09. 오오도리 특명전권공사가 일본해병 300명을 이끌고 경성에 귀임

1894.06.10.(05.07) 전주화약, 조선정부와 동학농민군 간에 화의 성립, 조선정부는 청나라와 일본에 철병을 요구

1894.06.12. 일본 제1육군 5사단과 3사단 1만 명이 인천에 상륙

1894.06.15. 일본 외상, 동학당 공동 진압과 조선 내정 공동 개혁안을 청에 제의 ▷청국은 쌍방이 동시 철군을 제안

1894.06.16.(05.13) 일본육군소장 오오시마 요시마사가 보병 3,000명과 기병 300명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

1894.06.21. 청, 일본의 제안을 거부함, 일본은 2차 수송대 파견을 결정

1894.06.22. 일본, 어전 회의에서 청에 제1차 절교서를 결정, 일본 추가 병력이 조선에 도착

1894년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조선일보)

1894.06.26.(05.23) 일본공사, 국왕에게 내정개혁을 요구

1894.06.30. 청나라 병사 2500명에 대해 일본 군인 8000명 주둔 부대가 서울 주변에 집결 ▷러시아, 청일의 동시 철군을 요구, 이어서 영국도 저정에 나섬

1894.07.03. 오토리 게이스케 공사가 철병요구를 거부하고, 조선정부에 내정개혁안을 제시

1894.07.07. 청나라 주재 영국 대사가 청국과 일본 간에 중재를 하였으나 결렬

1894.07.12. 이토 내각, 청국이 영국 조정안 거부를 비난하고, 청국과 국교 단절을 표명하는 제2차 절교서를 결정

1894.07.19. 일본, 개전을 결정, 청 함대와 수송선 공격하고 아산에 주둔한 청군 공격을 명령

1894.07.20. 일본공사, 청과 조선의 종속 관계 파기 등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조선에 통고

1894.07.23.(06.21) 갑오변란, 일본군은 경복궁을 무력 점령하고 고종을 연금하여 조선 관군의 무장을 해제

1894.07.25. 청일전쟁(~1895.04.17. 시모노세키조약)

1894.07.25.(06.23) 풍도해전, 일본 함대는 충청도 아산만에서 청 군함과 교전, 청군을 실은 영국 국적 수송선 고승호 격침

풍도 해전

1894.07.27.~1895.07.06. 갑오개혁(갑오경장), 개화파에 의한 일본식 개혁, 군국기무처 설치, 경무청 신설, 노비제 폐지.과거제 폐지,고문.연좌제 금지

1894.07.29.(06.27) 성환전투, 오시마 혼성 여단은 아산 주둔지에서 약 15km 떨어진 성환으로 나와 청군을 격파

성환 전투

1894.08.01. 일본, 청국에 전쟁을 선포, 청 광서제의 선전 상유를 발포함

1894.08.02. 일본, 천황의 선전 조칙 발포

1894.08.15.(07.15) 제1차 김홍집내각 성립

1894.08.26.(07.26) 조선 정부는 일본의 강요에 따라 조일공수동맹(朝日攻守同盟) 체결

1894.09.01. 대본영, 제1군을 편성하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사령관으로 임명

1894.09.11.(08.12) 동학농민군, 천안에서 일본인 6명을 살해

1894.09.13. 히로시마 대본영, 전쟁 지휘를 위해 히로시마로 이동, 15일 도착

1894.09.15.(08.16) 평양전투, 일본군은 3방향에서 평양성을 공격(09.16. 점령), 청군이 항복하고 일본군 평양성에 입성

평양 전투, 미즈노 도시시 카타의 목판화

1894.09.17. 황해 해전, 압록강 하구에서 청나라 북양함대와 일본 함대의 대규모 전투에서 일본군 승리하여 제해권 확보

황해 해전

1894.10.24. 압록강 전투, 일본군은 압록강에서 배다리를 설치하고 강을 건너 3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승리

압록강 전투

1894.10.26.(09.28) 신임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부임, 공사는 대본영에 농민군 진압을 위한 1개대대 병력의 파견을 요청

1894.10.24. 일본군 제1군, 압록강을 도하 시작, 제2군은 요동 반도 상륙 시작

1894.11.06. 제2군, 요야마 이와오 사령관, 랴오둥반도의 화위안커우에 상륙하여 진저우 점령

1894.11.21. 여순 전투, 만주 여순에서 일본군은 주요 방어 진지를 함락하고 요새, 조병창 등을 접수 

여순 전투

1894.11.21.~11.24. 여순 대학살, 제1군 1사단에 의해 청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여순 시민 등 중국인 4천여명을 학살

1894.12.05.~12.10. 공주 우금치전투,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 및 조선관군 연합군 전투에서 농민군 36,000명 전사

1894.12.13. 제1군, 하이청을 점령

1895.01.20.~02.12. 웨이하이 전투, 일본군과 청군은 지상전과 해전으로 일본군이 웨이하이 요새를 포위해 공격, 류궁다오 수비대와 북양함대가 항복 ▷북양함대 사령관 정여창 등 항전파 장군들 자살(02.12)

북양함대 제독 정여창의 항복, 상상도

1895.02.01. 히로시마 담판, 청일의 강화 전권이 히로시마 현청에서 회담, 청국의 전권 위임장이 갖춰지지 않은 것을 이유로 일본 측이 교섭 거부

1895.03.04. 일본군 뉴장성 점령

1895.03.09. 톈좡타이 점령, 일본군 시가지를 불태우고 철수

1895.03.20. 시모노세키 담판, 전권 이토 히로부미와 무쓰 무네미쓰, 청 전권 이홍장과 제1회 강화 회담

1895.03.23. 일본군, 펑후제도에 상륙(25일 점령)

1895.03.24. 이홍장, 제3회 강화 회담에서 돌아오는 길에 저격당하여 부상

1895.03.26. 일본군은 대만 부근의 펑후 제도를 희생자 없이 점령

1895.03.29. 휴전조약의 조인

1895.03.29. 일본군 타이완에 상륙하여 타이완 점령

1895.04.23.(03.29) 전봉준·손화중·김덕명·최경선·성두한 등의 농민군 지도자 교수형

1895.04.23. 삼국간섭,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일본에 대한 간섭을 시도, 일본이 요동 반도를 청에 반환

1895.04.17.(03.23) 시모노세키 조약, 청이 조선이 독립국임을 확인하고 랴오둥 반도, 타이완 섬, 펑후 제도 등 부속 도서를 일본에 할양, 전쟁 배상금 2억냥을 일본에 지불, 항저우 등 4개 항구 개항, 발효(1895.05.08)

 

1895.04.23. 삼국 간섭, 독일.프랑스.러시아 3개 국가가 무력을 배경으로 랴오둥반도를 청에 돌려 줄 것을 일본에 권고

1895.05.04. 일본, 랴오둥반도를 청에 전면 반환하기로 결정

1895.05.25. 대만 주민, 대만민주국을 수립

1895.05.29. 일본군은 할양된 타이완 북부에 상륙 시작

1895.06.07. 일본군이 대만 타이베이를 점령

1895.06.17. 일본이 대만에 대만 총독부 설치, 가바야마 스케노리를 대만총독으로 임명 

1895.10.08.(08.20) 을미사변, 일본은 흥선대원군을 옹립하여 친일 정권을 세우고자 명성황후 민씨를 살해

1895.10.21. 일본, 대만 타이난 점령

1895.11.18. 가바야마 총독, 대만을 평정했다고 대본영에 보고

1896.02.11.~1897.02.20. 아관파천, 을미사변으로 고종은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1896.02.11. 아관파천, 조선 국왕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김, 친일파 정권 붕괴

1896.04.01. 대본영 해산

 

@청일전쟁 | 오타니 다다시 저, 이재우 역, 오월의 봄, 2018

**갑신정변 연구, 역사비평사, 박은숙 연구원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차 세계대전 연표(1939년~1945년)  (0) 2020.09.16
제1차 세계대전 연표(1914년~1918년)  (0) 2020.09.1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