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5일, 제5대 정·부통령선거가 실시되어, 투표율 94.3%로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이 당선됨
1960년 3월 15일, 정부와 여당이 경찰을 동원해 야당 참관인들을 몰아내는 등 광범위한 부정선거를 자행함에 따라, 민주당은 3월 15일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의 무효를 선언함
1960년 3월 15일~30일 경남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과의 충돌로 7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상을 입으며, 59명이 경상을 입고 21명이 구속됨
1960년 3월 17일, 마산 중고생에게 금족령이 내려졌고, 마산 사건으로 인해 219명의 시민이 연행되었으며, 오후 7시부터 통금이 실시됨
1960년 3월 18일,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마산 사건으로 인해 사표를 제출했고, 3월 22일 홍진기가 임명됨
1960년 3월 24일, 부산에서 고등학생 1천여 명이 부정선거와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임
1960년 3월 28일, 대한변호사협회는 마산 사건의 시위 원인이 부정선거였으며, 사건의 확대는 경찰의 책임이라고 밝힌 진상 보고서를 발표함
1960년 4월 6일에 민주당과 민권수호총연맹 등은 3월 15일의 부정선거를 비난하며 시위 행진을 벌임
1960년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 발견이 제2차 마산 시위의 발단이 됨. 약 3만 명의 시위대가 시청과 파출소를 포함한 여러 건물을 파괴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임
1960년 4월 13일, 이승만 대통령은 3.15 마산 시위 등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대해 공산당의 개입 혐의가 있다고 특별 담화를 발표함
1960년 4월 18일, 약 3,000명의 고려대 학생들이 마산 사건의 책임자 처벌과 경찰의 학원 출입 금지를 요구하며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도중 청계천 4가에서 폭력배에 의한 습격을 받음
1960년 4월 19일, 서울 시내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도심으로 진출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펼쳤으며, 경무대 인근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142명이 사망하고,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됨
1960년 4월 19일, 정부는 오후 3시에 서울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오후 5시부터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의 주요 도시로 그 조치를 확대함
1960년 4월 21일, 4.19 혁명의 사상자 명단이 발표되었고, 사망자는 민간인 111명과 경찰 4명이었으며, 부상자는 민간인 666명과 경찰 169명으로 집계됨
1960년 4월 23일, 이승만 대통령은 4.19 운동으로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을 방문함
1960년 4월 25일, 전국의 258명 대학교수들이 국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14개 조항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참여함
1960년 4월 26일, 전국 각지에서 시민과 학생들은 이승만의 독재 정치, 부정 선거, 그리고 사상자 발생에 항의하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임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시국수습안 발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 사임하고 정부통령선거 재실시, 이기붕 공직 사퇴, 내각책임제 개헌 결의를 발표
1960년 4월 27일, 검찰이 4.19 사건의 연행된 모든 사람들을 석방함
1960년 4월 28일~8월 8일, 허정 과도정부가 출범했고, 허정 내각수반은 3개월 이내에 개헌과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함
1960년 5월 27일, 과도정부는 서울지역 비상계엄령을 해제함
1960년 5월 29일, 이승만 전 대통령은 허정 과도정부 수반의 주선으로 하와이로 망명함
1960년 6월 15일, 국회는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찬성 208표, 반대 3표로 가결하고, 정부는 이를 공포함
1960년 7월 25일, 제4대 국회는 내각책임제를 의결하고 자진 해산함
1960년 7월 29일, 총선 결과, 민의원 233석과 참의원 58석 가운데 민주당이 민의원에서 175석, 참의원에서 31석을 확보함
1960년 8월 12일,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윤보선 의원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됨
1960년 8월 13일, 대통령 윤보선 취임, 내각책임제의 제2공화국이 출범함
1950년 | 1952년 | 1954년 | 1956년 | 1958년 | 1960년
1948.05.10. 남한총선거 실시, 유엔한국위 감사하에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 실시(5.10총선)
1948.05.31. 제헌국회 개원, 제헌국회는 국회의장 이승만, 부의장 신익희, 김동원 선출
1948.06.16. 이승만 대통령책임제 표명, 이승만은 헌법기초위원회에 참석하여 대통령책임제를 표명
1948.06.16. 국가 경제방식 결정, 헌법기초위원회는 통제경제와 자유경제 병행을 결정함
1948.07.01. 대한민국 국호 결정, 제헌국회는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결정함
1948.07.17. 대한민국 헌법 공포, 국회의장 이승만은 헌법안에 서명하고 공포함
1948.07.20. 대통령·부통령 선출, 국회는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선출, 선출실황을 국회에서 중계방송함
1948.07.24. 초대 대통령 취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
1948.07.31. 국무총리 이범석 임명, 국회는 이범석(李範奭)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을 가결함
1948.08.04. 국회의장·부의장 선출, 국회는 의장 신익희(申翼熙), 부의장 김약수(金若水)를 선출함
1948.08.05. 대법원장 김병로 임명, 국회는 초대 대법원장에 김병로를 임명
1948.0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제1공화국 출범. 임시정부를 해산하고 독립국가를 건국
1948.10.22. 반민특위 발족, 국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
1949.04.22. 학도호국단 결성, 서울운동장에서 대한민국 학도호국단(學徒護國團) 결성식 개최
1949.08.31. 반민특위 활동 종료, 반민족행위처벌법 공소 시효기간 종료
1950.06.25. 한국전쟁, 북한군이 38도선 전역에서 불법 남침, 1953년7월 휴전
1950.07.16. 정부 대구 이전, 정부는 수도를 대전에서 대구로 이전
1950.07.17. 정부 부산 이전, 정부는 수도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전
1950.09.15. 인천상륙작전, 유엔군 맥아더 사령관 지휘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함
1950.09.28. 서울 수복,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함
1950.10.04. 지리산공비토벌작전, 지리산 지역의 남부군 토벌을 위해 국군 4개 사단이 작전을 수행함
1950.10.25. 중공군 1차 공세, 국군 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운산에서 최초로 중공군 제39군과 교전
1950.11.25. 중공군 2차 공세, 중공군과 북한군이 유엔군과 한국군에 총반격을 개시함
1950.12.31. 중공군 3차 공세, 북한군과 중공군이 총공세를 개시하여 38선 이남으로 밀고 내려옴
1951.02.11. 중공군 4차 공세, 중공군은 중서부 전선의 연합군을 섬멸하기 위해 총공세를 전개
1951.04.22. 중공군 5차 공세(~04.29) 중공군 4월 공세·춘계 공세로 서부전선을 주공격으로 약 30개 사단을, 중부전선에 북한군 포함 15개 사단을 투입한 중국군의 최대 병력과 장비를 투입
1951.05.15. 중공군 6차 공세(2차 춘계공세) 중공군 10만 명이 소양강 동쪽의 국군과 미군 제10군단을 공격
1951.12.23. 자유당 창당, 제1공화국의 집권 여당으로 이승만·이범석·장택상·장면·이기붕 등 참여
1952.01.18. 국회 대통령 직선제 부결, 국회는 제2차 개헌안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부결
1952.04.17. 내각책임제 개헌안 제출, 국회의원 123명이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
1952.05.14. 정부 대통령직선제 제출, 정부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제4차) 제출
1952.05.25. 비상계엄 선포, 이승만 대통령은 공비 소탕을 위해 경상도·전라도에 비상계엄을 선포
1952.05.26. 부산정치파동, 임시수도 부산에서 헌병대가 국제공산당과 결탁 혐의로 야당의원 50여명을 연행
1952.06.14. 대통령 직선제 개헌 촉구,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 촉구 서한 발송
1952.06.15. 대통령 정치상황 담화, 정부비판세력·공산당이 국회를 통해 공격해온다고 비판하며 국회를 압박해 독재정권을 만들려고 한다는 말에 대해서 반박
1952.06.20. 국제구락부사건, 야당인사들이 부산국제구락부에서 반독재호헌구국선언을 개최하자 괴한들이 회의장에 난입함
1952.07.04. 발췌개헌안 통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야당 개헌안에서 일부를 발췌한 개헌안 통과
1952.07.07. 제1차 헌법개정안 공포, 대통령 선출 방식을 국회의원 간선제에서 국민 직선제로 변경
1952.08.05. 제2대 정·부통령선거 실시,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함태영 당선
1952.09.18. 공산군 추계공세 개시, 기간(~10.31.) 조중연합사령부는 추계공세를 개시, 60개 진지에 77차례 공격
1953.03.13. 지리산 잔비 1천 명 내외 발표, 치안국은 지리산지구 잔비가 1천 명 내외라고 발표
1953.04.11. 이승만 정전반대 성명,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회담을 반대하며 국군 단독북진 성명 발표
1953.05.03. 신익희 서울 유세,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신익희의 서울 유세에 약 40만 명이 모임
1953.05.13. 중공군 5월공세 시작, 중국군이 한국전쟁 최후 공세의 제1단계 5월 공세를 시작
1953.05.30. 미국 에버레디계획 확정,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 퇴진을 위한 계획을 확정
1953.06.07. 대통령 단독 북진 성명,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에 관한 한국안 거부하면 단독 북진하겠다고 성명
1953.06.10. 중공군 7차 공세(6월 공세) 철원과 화천 북방 금성지구에 중공군 3개 군단이 국군 2군단의 고지를 점령하고 남하
1953.06.18. 반공포로 석방, 이승만 대통령은 7개 수용소에 있던 반공포로 27,389명을 석방
1953.07.13. 중공군 7차 공세, 기간(~07.27) 휴전회담 임박한 중공군이 국군 제2군단 및 수도사단이 방어하는 금성돌출부에 대한 총공격 개시(7.13 공세)
1953.07.27. 휴전협정 체결, 판문점에서 유엔군∙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 간에 정전협정 체결, 대한민국은 휴전협정서에 서명하지 않음
1953.08.06. 공비토벌 전과 발표, 치안국은 1950년 10월부터 1953년 7월 사이 공비토벌 전과를 발표, 사살 73,379명·생포 24,050명
1953.08.10. 남한 활동 공비 7천8백 추산, 치안국은 현재 남한에서 활동 중인 공비의 수를 약 7천 8백 명으로 추산
1953.08.15. 정부 서울 복귀, 정부는 서울로 복귀를 선포, 08.16.국회 복귀
1953.08.19. 전쟁미망인 30만 명 발표, 사회부는 전쟁미망인이 30만 명이라고 발표
1953.10.01.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워싱턴에서 한국과 미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서명, 한반도에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미국은 유엔의 결정을 거치지 않고도 즉각 개입할 수 있게 됨
1953.12.01. 비상계엄 선포, 남부지방에 공비소탕을 위한 비상계엄령을 선포, 1954.04.10.해제
1953.12.14. 한미공동경제위협정 체결, UN·미국 원조하에서 통화·재정 안정, 단일외환율의 설정을 중심으로 하는 가격정책 확립, 자유기업체제 확립, 대충자금 운용 등 경제시책 방향 규정
1954.02.18. 문맹퇴치운동 전개, 문교부·내무부·국방부 3부 합동으로 문맹퇴치운동 전개
1954.05.31. 한·UNKRA 경제원조협정 체결, 한국과 UN 한국재건위원단(UNKRA) 과의 경제원조협정 서명, 한국의 재정안정과 경제자립을 목표
1954.09.08. 3선 제한 철폐 개헌안 제출, 정부는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3선 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헌안을 제출
1954.11.27. 제5차 개헌안 부결, 초대 대통령 중임제한 철폐 개헌안이 찬성 135, 반대 60으로 부결됨
1954.11.29. 사사오입 개헌, 자유당은 단독으로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 통과시킴
1954.11.30. 호헌동지회 결성, 민국당·자유당 탈퇴파·무소속 동지회 등 범야 세력을 규합하여 호헌동지회를 결성
1955.03.17. 동아일보 무기정간, 괴뢰 오식 사건으로 1개월 무기정간 처분, 04.16.해제
1955.05.31. 한미잉여농산물원조협정 체결, 소맥중심의 양곡과 원면·우지 등의 무상도입, 1981.05.18.종료
1955.06.08. 한일통상협정 체결, 정부는 일본과 한·일통상협정 조인
1955.08.18. 대일 통상 전면금지, 재일교포 북송 등 정치적 이유로 한·일통상협정 단절, 해제(1956.01.18.)
1955.08.26. IMF·IBRD 가입,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가입
1955.09.18. 민주당 창당, 호헌동지회의 자유민주파가 주축이 되어 최초의 야당 정당을 창당
1956.02.03. 한.미국 원자력협정 체결, 워싱턴에서 한국과 미국 간의 원자력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 서명
1956.02.27. 경제부흥 5개년계획 수립, 정부는 총예산 1조 1천억 환이 투입되는 경제부흥 5개년계획(1957~1961년)을 수립, 03.02.공표
1956.03.20. 전국 절량농가 22만호 집계, 전국 절량농가 22만 7,174호 약 110만 명
1956.03.29. 농지개량 5개년 계획 수립, 헌법기초위원회는 농림부는 농지개혁 5개년계획 수립, 67만 정보 관개시설 개선
1956.03.30. 공화당 창당, 이범석 지청천 등이 조선민족청년단체가 장택상 세력을 흡수하여 창당
1956.05.05. 민주당 대통령 후보 사망,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호남지방으로 유세를 가던 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
1956.05.15. 제3·4대 정·부통령선거, 대통령 자유당 이승만 후보, 부통령 민주당 장면 후보 당선
1956.08.08. 전국 지방선거 실시, 임기 4년의 지방 시·읍·면장(市邑面長)과 의원선거를 실시함, 08.11.개표완료
1956.08.31. 수출 5개년계획 수립, 상공부는 수출 1억불 달성을 목표로 수출 5개년계획을 수립
1956.09.28. 장면 부통령 피습,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퇴장하던 장면 부통령이 피습, 현장에서 범인 체포
1956.11.02. 체포간첩 375명 집계, 정부는 휴전 후 체포간첩 375명으로 집계
1956.11.10. 진보당 창당, 조봉암 등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창당, 1958년 2월 해산
1957.05.17. 탄전종합개발10개년계획 수립, 상공부는 탄전종합개발10개년계획(’57~’66) 수립. 총 소요 외자액 약 6천만 달러
1957.07.10. 수리사업 3개년 계획 수립, 농림부는 수리사업 3개년 계획을 수립, 총 소요경비 697억 환
1957.08.19. 비료증산 5개년 계획 수립, 농림부는 1958년 기점 자급비료증산 5개년계획 수립
1957.09.05. 식량증산 5개년 계획 수립, 농림부는 식량증산과 외곡도입 5개년계획을 수립
1957.11.10. 농지개량 5개년 계획 수립, 농림부는 농지개량 5개년(1958∼1962년)계획 수립
1957.12.27. 농업증산 5개년 계획 수립, 국무회의는 농림부의 농업증산 5개년 계획 채택
1958.01.13. 진보당 사건,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 7명 간첩 혐의로 체포, 1959년7월 사형
1958.02.14. 원자력발전 8개년 계획 수립, 정부는 원자력 연구와 개발,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원자력발전 계획을 수립
1958.02.22. 유엔군 철수불가 성명,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은 민주주의 방식의 재통일이 될 때까지 철수불가 방침을 성명
1958.02.28. 전국 깡패 일제 단속, 경찰은 전국 깡패 일제단속으로 2,289명 검거, 그 중 학생이 30%
1958.04.11. 사방사업 10개년 계획 수립, 농림부는 1958년도 기점 조림 및 사방사업 10개년 계획 수립
1958.05.02. 제4대 민의원 선거, 투표율 90.6%, 의석수 233석 중 자유당 127석·민주당 79석·무소속 27석 차지, 부정행위로 선거소송이 105건이 제기
1958.06.08. 서해안 무장간첩 사건, 해군은 서해안에서 무장간첩과 총격전, 3명 사살 1명 생포
1958.07.17. 기술훈련 5개년 계획 수립, 상공부는 6백만 5천 달러를 투입하여 기술자 1,730명 양성을 목적으로 기술훈련 5개년 계획 수립
1958.08.08. 함석헌 필화 사건, 함석헌은 사상계에 발표한 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장준하 사장과 함께 구속
1958.12.02. 국가보안법 반대 성명, 민주당 민혁당 노농당 3당은 국가보안법 반대 공동성명
1958.12.24. 국가보안법 개정, 자유당은 여당 단독으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신국가보안법)
1958.12.28. 농지개혁실적 발표, 농림부는 1950~1958년까지 농지개혁실적을 발표, 총 47만 20정보를 154만 9532농가에 분배함
1959.01.06. 국가보안법 철회요구 성명 발표,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철회요구 성명 발표
1959.01.15. 신국가보안법 발효, 국가보안법 3차 개정을 민주당 및 사회각계각층에서 반대하는 가운데 발효
1959.01.22. 반공청년단 결성, 국민회 청년건설대가 대한반공청년단으로 개명, 정부와 자유당의 비호를 받으며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
1959.02.10. 종합탄전개발 7개년계획 수립, 상공부는 종합탄전개발 7개년계획 수립, 석탄 35% 증산을 위해 국영탄광과 민영탄관을 개발하고 육상 수송을 강화함
1959.02.27. 조봉암 사형선고, 대법원은 진보당사건 관련 조봉암, 양명산 피고에 사형 언도, 사형집행(07.31.)
1959.04.02. 조선공업 5개년계획 수립, 상공부는 조선공업 진흥을 위한 조선공업 5개년계획 수립
1959.04.30. 경향신문 폐간, 2월 4일자 칼럼 '여적'에 실린 글로 인해 관련자들이 내란선동 혐의로 기소되고 경향신문은 폐간 조치함
1959.06.15. 대일교역중단 발표, 정부는 재일교포 북송 문제로 대일교역 중단조치를 발표
1959.06.19. 사방사업 8개년 계획 수립, 농림부는 사방사업 8개년 계획 수립
1959.12.24. 경제개발 3개년 계획 수립, 산업개발위원회는 연평균 성장률 5.2%의 경제개발 3개년계획 수립
1960.02.15. 조병옥 대통령 후보 사망,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미국 워싱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함
1960.02.28. 대구학생시위, 대구에서 부통령 후보의 대구 선거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시내 고등학생에게 일요일 등교지시를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 발생
1960.03.08. 대전학생시위, 기간(~03.10.) 대전에서 1천여명의 학생들이 공명선거를 요구하고 시위를 전개
1960.03.15. 제5대 정·부통령선거 실시, 투표율 94.3%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당선
1960.03.15. 민주당 선거 무효 선언, 민주당은 3.15 정·부통령 선거의 무효 선언
1960.03.15. 3.15마산시위, 기간(~03.30.) 경남 마산에서 부정선거 규탄시위 발생, 경찰과 충돌로 사망 7명·중상 13명·경상 59명·구속 21명
1960.03.17. 마산 중고생 금족령, 마산사건으로 시민 219명 연행, 학생들에게는 금족령, 통금은 19시부터 실시
1960.03.18. 내무부장관 사표 제출, 마산사건으로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사표를 제출, 03.22.홍진기 임명
1960.03.24. 부산 학생 시위, 부산에서 고등학교 학생 1천여 명이 부정선거와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항의하며 시위
1960.03.28. 마산사건 진상보고서 발표, 대한변협은 시위 원인은 부정선거이며 사건 확대는 경찰의 책임이라는 보고서를 발표
1960.04.06.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민주당과 민권수호총연맹 등은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가행진 전개
1960.04.11. 2차 마산시위, 기간(~04.17.) 김주열 시체 인양을 계기로 제2 마산 시위 발생. 3만여 명의 시위대는 시청, 파출소 등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 전개
1960.04.13. 마산시위 특별담화, 이승만 대통령은 3.15 마산 시위 등 일련의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대해 배후에 공산당 개입 협의가 있다고 특별담화 발표
1960.04.18. 고려대생 폭력배 습격사건, 고려대생 3천여명이 시위도중 청계천 4가에서 폭력배 습격사건이 발생
1960.04.19. 4.19혁명, 서울시내 대학생·고교생들이 시내로 진출하여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전개, 경찰 발포로 142명 사망
1960.04.19. 비상계엄령 선포, 기간(~07.16.) 정부는 오후 3시를 기해 서울 지역에 계엄령 선포, 오후 5시부터 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
1960.04.21. 4.19사상자 명단 발표, 사망자 민간인 111명·경찰 4명, 부상자 민간인 666명·경찰 169명
1960.04.23. 대통령 4.19 부상학생 위문,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대 부속병원에 4.19 부상학생 위문 방문
1960.04.25. 대학교수단시위, 학생들이 희생되자 각 대학 교수들이 시국수습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를 전개
1960.04.26. 4.26시위, 서울을 비롯 전국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 정치와 부정선거, 사상자 발생에 대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 전개
1960.04.26. 이승만 시국수습안 발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 사임·정부통령선거 재실시·이기붕 공직 사퇴·내각책임제 개헌 결의 발표
1960.04.27. 4.19연행자 전원 석방, 검찰은 4.19연행자 전원을 석방
1960.04.28. 허정 과도정부 출범, 기간(~08.08.) 허정 과도정부 내각수반이 3개월 이내 개헌과 총선에 대한 성명 발표
1960.05.23. 제1대 서울대 총학생회 출범, 학도호국단이 해체되고 학생 자치기구로 '총학생회'가 출범
1960.05.27. 서울지역 비상계엄령 해제, 과도정부는 서울지역 비상계엄령을 해제
1960.05.29. 이승만 하와이 망명, 이승만은 과도정부 허정 내각수반의 주선으로 하와이로 망명
1960.06.15. 내각책임제 개헌안 국회통과, 제3차 헌법개정. 국회는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찬성 208표·반대 3표로 의결, 정부 개정헌법 공포
1960.07.25. 제4대 국회 해산, 국회는 내각책임제를 의결하고 자진 해산함
1960.07.29. 7.29총선, 민의원 233명과 참의원 58명 선출에서 민주당이 민의원 175석, 참의원 31석을 차지함
1960.08.12. 제4대 대통령 선거,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초대 대통령에 민주당 윤보선 의원을 선출
1960.08.13. 제4대 대통령 윤보선 취임, 내각책임제로 제2공화국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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