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로 유신정권이 붕괴되고 이를 기회 삼아 대권 경쟁을 벌이는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선전선동으로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가 격화되었다
1979.10.27. 정부는 제주도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군은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하다, 최규하 대통령 대행은 국가비상시국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1979.12.12.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노태우 등 군 내부 하나회 출신 소장파 장교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육군본부, 국방부, 특전사 사령부 등을 점령한다
1980년 봄, 3김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다짐하고 있었고 대학생들은 신군부의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다.
1980.03.28. 서울대 총학생회 출범을 시작으로 전국의 주요대학들이 학생회를 구성하고 학원민주화투쟁을 벌인다
1980.04.29. 계엄사는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과격한 학원 소요와 노사분쟁에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한다⑤
1980.05.02. 서울대생 1만여명이 '민주화대총회'를 개최하고 계엄령 해제를 요구한다
1980.05.01.~05.15. 전국 30개 대학 10만 여명이 "계엄철폐"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 주변에서 폭력 집회를 가진다ⓦ
1980.05.12. 정부는 북한 게릴라 침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군경에 비상경계체제 돌입을 발령한다⑤
1980.05.13. 시내 6개 대학 2천5백여명이 광화문 일대에서 '계엄철폐'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인다⑤
1980.05.14.~15. 전국 30개 대학 10만여명이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폭력 시위를 벌인다⑤
1980.05.17.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학생소요를 배후조정 했다는 혐의로 김대중을 체포하고 김영삼을 가택에 연금한다
1980.05.17. 전국 55개 총학생회장단이 이화여대에서 시국문제 철야 토론중 다수가 출동 경찰에 연행된다
시간대별 내용은 각 기관의 보고서와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옮겼고, ⓖⓚⓢⓣⓟⓦ등 해당 출처를 의미합니다.
ⓖ5.18기념재단, ⓚ서울지방검찰청 ⓢ국가안전기획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전남경찰 ⓦ위키백과
14:00~17:00. 전남대 등 광주지역 9개 대학연합 1만여 명이 가두 성토 대회를 가지고 시국선언문을 발표ⓢ
15:00. 전남대 조선대 등 9개 대학 3만 여명이 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시국성토대회를 개최
19:30~22:00. 광주시내 대학생 및 고교생 1만여 명이 연합 횃불 시위를 전남대 송기숙 교수가 주도, 전국 대학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사태관망 후에 시위재개를 합의하고 자진해산ⓢⓤ
19:40. 치안질서 회복을 위해 도청일대 8000여 명 경찰 조치
20:00. 참가자들은 횃불시위를 벌이며 '계엄철폐' 등을 요구
22:30. 석유 수급문제로 중동을 순방중이던 최규하 대통령이 시위가 격화되자 일정을 앞당겨 급거 귀국ⓤ
1980.05.17. 정부는 국가안전을 보호키 위해 불가피하게 5.17 비상조치를 단행하다
북의 동태 및 전국에 걸친 소요 사태 대비하여 11특전여단 308/1056명의 병력을 투입ⓢ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여 학생들을 연행
10:40. 2군사령부는 광주 소재 8개 전문대학에 31사단 병력 투입을 지시ⓚ
16:00. 7공수여단 33, 35대대를 31사단에서 작전통제하도록 지시ⓚ
21:40. 비상국무회의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의결ⓦ
22:00. 정부는 광주에 1920여명의 계엄군을 투입ⓟ
23:00. 광주지구 보안부대는 보안사의 지시에 따라 시위 주동자에 대한 예비검속을 실시하여 재야인사와 확생회 간부 등 연행대상자 22명 중 8명을 체포ⓟⓚ
24:00. 정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대학에 휴교령을 내림ⓤ 5월 17일 24시부로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신군부 계엄포고 제10호를 통해 정치활동 금지, 언론검열 강화, 대학교 휴교령 선포. 주요 도시의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전남대생 200여 명이 대학휴교 조치로 학교출입이 저지되자 학교 경비 군인들에게 투석전을 전개한 것을 시발로 이에 가세한 1천여 명이 광주시가지로 진출하여 경찰과 투석전 대치, 파출소 투석, 경찰차 방화 등 시위를 확산하다
00:40. 계엄포고 제 10호 발표로 정치활동 중지 및 집회금지하고 각대학은 당분간 휴교ⓢ
01:00~02:00. 보안사령부(사령관 전두환)가 김대중 등 재야 인사와 김종필 등 공화당 지도자를 체포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점령하여 국회 기능이 마비ⓦ
01:30. 계엄사는 전국 각대학 및 주요 보안 목표에 병력 투입을 지시ⓢ
01:10. 7공수여단의 33대대는 전남대, 35대대는 조선대에 배치ⓜⓚ31대대는 전북대에(01:39), 32대대는 충남대에 배치(02:50)ⓚ
02:29. 20개 학교에 충정부대 장교 14명/사병 1132명 배치ⓕ
02:40. 11공수여단 조선대학교에 추가 배치
09:00.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생 50여명이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 당함ⓦ
09:30. 전남대생 200여명 계엄군에 투석 시위를 벌임ⓢ, 7명의 군인들이 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부상을 당함
09:40. 5월14일에서 16일까지 평화로운 민족민주화성회에서 광주 학생과 시민들은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도청앞 분수대에서 모이자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기억한 전남대 학생들이 정문에서 광주에 진주한 7공수부대와 접전ⓖ
10:00. 전남대 정문 앞에 200여 명이 집결하고, 계엄확대와 휴교조치에 항의하며 투석ⓦ, 공수부대의 강력한 해산조치에 도심으로 진출ⓟ 학생들이 "계엄해제""휴교령 철폐"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
10:15. 공수부대원들의 곤봉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학생들이 던진 돌에 부상자가 발생한 계엄군이 곤봉을 휘두르며 항의시위를 진압ⓦ
10:20. "금남로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
10:30. 전남대 후문 쪽에서 공수부대원이 학생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더러는 연행하여 꿇여 앉혔으며, 공수부대원들에 쫓긴 학생들은 대열을 이루어 광주역, 공용터미널을 거쳐 금남로로 진출ⓚ
10:30. 학교 출입을 거부당한 전남대학생들을 주축으로 대학생 1천여명이 광주 시내 금남로에 집결하여 "계엄 해제" 요구하는 시위
10:50. 전남대 정문 앞에서 200여 명이 계엄군에 투석ⓟ
11:00. 전남대 300여 명 가톨릭 회관 집결,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시킴ⓦ
11:00. 전남대생 등 200여명이 충장로 파출소에 투석하여 유리창 7매를 파손하고 학생들은 시가지로 진출ⓚ,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증가ⓟ 경찰 4명 중상, 23명 경상ⓢ
11:50. 가톨릭센터 및 한일은행 앞에서 학생 500여 명이 연좌농성 및 가두시위를 벌이다, 학생 1000여 명으로 증가하고 경찰이 강제해산 및 주모자를 체포ⓢ
12:00. 최규하 대통령이 특별 성명을 발표ⓢ
12:00. 전남대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옴ⓦ
12:30. 광주학생회관 및 한일은행 앞에서 학생 500여명이 시가지를 돌며 시위하면서 "도청 앞에서 시민이 다 죽어가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유포ⓢ
12:45. 학생 20여 명이 산수파출소에 투석하여 유리창 20매를 파손ⓢ
13:20. 학생회관 앞에서 시위대는 경찰의 페퍼포그 차를 전복시키고 화염병으로 방화ⓚ
14:25. 금남로 유동 삼거리에 학생 300여 명, 광주공원에 학생 300여 명이 시위ⓢ
14:40. 금남로 일대에 1500여 명, 충장로 일대에 16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경찰에 깨진 보도블록을 던짐
14:55. 기동1중대 차량에서 학생이 던진 화염병으로 지붕에 불ⓟ
15:30. 광주학생회관 앞에서 학생 100여 명 시위에서 경찰 가스차에 화염병 투척 방화ⓢ
15:40. 유동 삼거리에 7공수부대 61/539명을 데모진압에 투입ⓟ, 공수 제33대대 병력 35/267명은 전남대를 출발하여 유동 삼거리를 거쳐 금남로로 이동, ⓖ유동 삼거리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무자비한 진압작전 감행ⓖⓦ
15:40~16:30. 제7공수여단 33대대는 진압작전을 전개해 103명 체포ⓕⓟ
15:50~19:00. 제7공수여단 35대대는 173명 체포ⓟ
15:50. 학생 600여 명이 충장로 일원 도청방향으로 이동하여 시위를 전개하다, 학생 300여 명이 동산동 동산파출소에 투석하여 유리창 파손, 계엄군 35명을 투입ⓢ
16:00. 조선대를 출발한 7공수여단 35대대는 광주전화국 부근과 광주일고 부근 천교에 도착, 시위진압 작전에 돌입ⓚ
16:00. 계엄군을 투입하여 강력히 해산시키는 중 부상자 속출로 시민들 자극하였고, 유언비어까지 유포되어 시민들이 학생시위에 가세하고 계엄군에게 폭력으로 대항(전남경찰청 분석)
16:00. 금남로로 진출한 7공수여단 33대대가 최초로 광주 도심에서 시위대 해산작전 전개ⓟⓚ
16:28. 11여단 45/213명 선발대 도착하여 조선대 주둔ⓕ
16:40. 학생 300여 명이 지산파출소에 투석하고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방화ⓢ
16:55. 한국은행앞에서 학생 200여 명이 계엄군과 대치, 투석하면서 시민합세를 호소ⓢ
17:05~19:30. 도청앞 학생들이 1000여 명으로 증가, 극렬 시위전개(투석 등)로 군경과 대치, 가담학생 일제 검거를 시작하여 극렬 시위가담 학생 149명을 검거ⓢ
17:10. 헌병대에서 광주경찰서에 100명을 검거해 인계ⓟ
17:30. 공수부대원은 전투복에 대검을 꽂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학생을 검문하고 곤봉으로 폭행
17:50. 광주공항에 도착한 11공수여단 선발대인 61대대 1지역대는 숙영지인 조선대로 이동ⓚ
19:02. 계엄사령부는 광주지방 통행금지시간을 저녁 9시로 앞당겨졌다고 발표ⓖⓦ
20:00. 공수부대의 무차별 구타에 불안, 흥분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학생들에게 동조ⓦ
20:15. 가톨릭센터 등 시가일원에서 학생 2000여 명이 진압군과 투석전으로 대치(38/294)ⓟ, 7공수 여단 착검진압, 주동학생 61명 검거하고 강제해산ⓢ
20:15. 카톨릭센터 앞에서 100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과 계엄군에 투석
21:00. 조선대학 입구 철로변에서 공수부대 군인이 지나가는 학생 11명을 총 개머리판으로 구타ⓟ
21:00. 광주 시내의 시위가 확산되자 정웅 31사단장은 7공수여단 33, 35대대장을 소집하여 작전회의 실시
21:00. 계엄사령부 사령관 이희성 명의로 방송과 라디오를 통해 해산 경고문을 발표ⓦ
23:00. 도청 앞에서 학생들 재집결 시위를 재개, 계엄군은 도청청사내 주둔, 학생 405명을 연행ⓢ
23:20. 7공수여단 33, 35대대는 31사단장의 출동 명령에 따라 광주 시내에 출동하여 거점을 경비
23:40. 31사단장은 다시 작전회의를 소집하여 35대대는 도청 경비를 33대대는 광주역을 경비하도록 명령
7공수여단은 대학에 진주한다는 말을 듣고 바둑판과 배구공을 가지고 갔고 진압봉과 사과탄이 무기의 전부였다. 7공수여단의 주둔지가 전북이라 인원의 40%가 전라도 출신이었다.
경찰 부상 27명(중상 4, 경상 23)
공공시설 차량 41대 (파손 36, 방화 5)
깨스차 1대 방화, 싸이카 2대 파손
00:50. 제11공수여단 62, 63대대가 광주에 도착하여 조선대에 주둔ⓕⓚ
01:50. 7공수여단은 광주시내 골목을 다니며 가택을 수색하면서 시위진압ⓟ
03:00. 제11공수여단 증원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 전날 계엄군에게 쿠타당한 청각장애인 사망ⓖ
04:00. 제7공수와 제11공수는 임무를 교대ⓕ
09:30.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누문동 파출소를 방화ⓖⓦ
10:00. 62, 63대대는 장갑차를 선도로 차량 30대에 부대원들을 탑승시켜 시내 일원에서 무력시위 작전을 전개ⓚ
10:00. 시민들 수가 점차 불어나면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11공수여단은 위력 시위 이후 착검한 상태로 진입하여 대검으로 인한 자상자가 발생. 11공수 3~4명이 한조가 돼 골목마다 누비며 무차별 폭행ⓦ
10:40. 광주은행 관광호텔 수미다방 앞에서 학생 200여 명 시위, 군경과 대치 투석, 일반인 60여명 돌, 각목 등을 휘두르며 학생 시위에 가세ⓢ
10:52. 조선대학으로 군 트럭에 학생들을 연행, 갑바를 씌워 일어나면 발로 차고 감ⓟ
10:55. 중앙여고 앞에서 중앙여고생 박찬숙 등 600여명이 교내시위ⓢ
11:00. 금남로에는 공수부대원들이 곤봉으로 때려서 시민들이 없음ⓟ
11:00. 카톨릭센터 앞에서 시위대 3천여명을 해산시키면서 2백여 명을 체포ⓚ
11:10. 관광호텔 앞에서 학생 300여명이 돌과 각목으로 군경과 대치, 군경 장갑차 2대로 방어, 가담자 107명 검거, 외신기자 5~6명 취재ⓢ
11:50. 공수부대원들의 폭행으로 시민들이 학생들 편에 서는 것을 목격
13:30. 금남로에 있던 일부 시위대가 제일교회 신축공사장에 있는 기름통에 불을 붙여 경찰 저지선으로 굴려 폭발시킴ⓜ
14:30. 한일은행 앞에서 학생, 시민합류로 시위군중 1000여명이 군경과 대치, 관광호텔쪽으로 시위진출ⓢ
14:30. 관광호텔 앞에서 시위군중 2000여명이 공사장 자재이용 바리케이트 설치 및 방화, 군경과 대치하고, CBS사옥에 투석 및 승용차 탈취 방화ⓢ
14:30. 학생 2000여명이 도청쪽으로 시위ⓟ
14:40.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무리한 진압작전을 전개ⓖⓦ
15:00. 카톨릭센터 앞, 시위군중 3000여명으로 증가, 승용차 탈취 8대 방화, 계엄군 1명 중상 1명 경상ⓢ
15:00.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이 회의를 갖고 시위 진압을 완화하도록 건의ⓖⓦ
15:15. 시위대는 카톨릭센터 차고에 있던 승용차 4대에 방화ⓜ
15:18. 시위군중 3~4천으로 증가, 7공수여단 정보 참모에게 병력 지원요청ⓟ
15:27. 문화방송국 앞에 집력한 시위대 3천여명은 광주 상황을 보도하지 않는 방송 태도에 격분하여 방송국 건물에 돌을 던지고 언론사 취재차량 1대를 방화하고 인근 전자제품점에도 방화ⓜⓚ
15:55. 전남대 주둔 7공수여단 33대대 병력이 출동하여 광주역, 공용터미널, 광주공원 등지를 착검한 상태에서 차량을 타고 위력시위ⓚ
16:00. 김정형 외과의원 앞, 군경 저지로 시위군중 1000여명으로 감소, 가드레일 및 공중전화 박스 등 파괴ⓢ
16:00. 광주일고, 대동고, 중앙여고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교내 집회 후 시내 진출을 시도ⓚ
16:30.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계엄군의 장갑차가 시위군중에 의해 포위되자 시민을 향해 발포, 첫 발포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의해 부상당하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이 투쟁에 나섬ⓖ
16:40. 광주터미널 앞에서 시민, 학생 1천여명이 합세하여 가드레일과 공중전화 부스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공수부대와 투석전을 벌임ⓚ
17:00. 11공수 63대대 일부 병력이 광주고 부근에서 시위대의 포위 공격과 최루탄 연기로 장갑차가 보도 턱을 들이 받고 정지하자 시위대 수명이 불붙은 짚단을 장갑차 속으로 던져 넣으려 하자 이에 장갑차를 타고 있던 장교가 장갑차 문을 열고 위협 사격 중에 고교생 대퇴부 총상을 입음ⓚ
17:00. 금남로 일대, 시위군중 3000여명으로 증가, 무장 진압군과 강경 대처
17:30. 광주역 카톨릭센터 앞 금남로 일대, 시위군중 2000여명으로 증가, 쇠파이프, 각목, 돌 등으로 무장하고 진압군의 장갑차 2대와 강경 대처, 총 1정 탈취ⓢ
18:00. 광주공원에 수천명의 시위대가 모여 전두환 타도 구호를 외치고 시위하다 해산ⓚ
19:00.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잠정부대 17/283명이 제31사단에 배속ⓕ
19:20~20:20. 시위군중 3000여명 공용터미날 등지에서 폭력시위 전개, 중흥동시장 앞 트럭 1대 방화, 북구청 유리창 110매 파손, 100여명이 광주역 파출소 습격, 도청 앞 선전탑 방화ⓢ
20:00. 수만명의 시민들이 시위대에 합류하여 "전두환 타도","김대중 석방","비상계엄 해제" 등의 구호를 외침ⓖⓦ
21:00. 7공수여단 33대대가 광주역에 다시 출동ⓚ
21:00~22:25. 시위군중 2000여명이 군경저지로 해산하면서 서방주유소 휘발유 9500리터 탈취
-100여명 양동파출소 습격하여 경찰차 1대 파괴 및 유리창 50매 파손
-100여명 임동파출소 점거방화, 60여명 광주역 파출소 점거 기물파괴ⓢ
-전남도 교위, 고교 휴교조치 등 발표, 광주시내 전 고교 20일부터 휴교, 국민학교는 22일부터 임시휴교
21:15. 경찰관서 최초로 임동파출소 방화, 방화범 13명 전남북 계엄분소 치안처로 인계지시ⓟ
22:00. KBS 광주방송국에 시위대 1백여명이 침입하여 기물을 파괴ⓚ
22:00. 광주권 2개서 무기 실탄 및 비밀문서 소산 완료ⓟ
23:08. 육군본부는 3공수여단에 광주 투입 명령을 하달ⓚ
사망 2(민간인), 부상 6(중상 3, 경상 3)
승용차 10대, 트럭 1대 방화
총기 1정 탈취
유리창 1,600건 파손
시위대는 탈취한 민간차량으로 바리케이트 설치하여 군경과 대치하고 민간버스 트럭 택시 300여대를 시위에 동원하여 군경저지선 돌파시도, 일부 시위대는 광주세무서 등을 습격, 무기고에 있던 칼빈, M1 소총 등을 탈취하여 무차별 사격 및 세무서, MBC, KBS 등 공공시설에 방화
05:00. 전교사는 500MD 헬기 3대를 지원 요청, 2개 공수여단 병력 증원 요청(05:30)ⓚ
06:00. 11공수여단은 광주 동부지역에 병력을 배치, 61대대는 금남로 상업은행 일대에, 62대대는 충장로 광주우체국 일대에, 63대대는 금남로 광주은행 일대에, 7공수여단 35대대는 금남로 한일은행 일대에, 33대대는 광주역에 배치ⓚ
07:04. 3공수여단 255/1137명이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광주에 도착ⓚ전남대에 도착ⓕ
08:00. 고등학생들의 참여로 정부는 광주 시내 및 광산군, 나주군 일대 고등학교에 휴교 조치ⓖⓦ
09:00. 31사단은 재차 광주 시내 예비군 무기 6,508정, 실탄 42만발을 군부대로 회수 조치, 미회수 총기는 공이와 노리쇠를 제거하고 탄약은 매몰하는 등 긴급조치ⓚ
10:20. 7공수여단 35대대가 카톨릭센터 앞에서 남녀 30여명이 속옷만 입힌 채 심하게 구타ⓚ하고 공수부대와 시민간의 공방전이 계속ⓖⓦ
12:00. 특전사는 전교사 기밀실에 상황판을 설치하고 전교사 건물 옥상에 전용무전기를 설치하여 상황보고를 받음ⓚ
12:30. 3공수여단 병력이 광주시내 투입, 11대대는 황금동 일대에, 13대대는 공용터미널에, 15대대는 양동사거리 일대에 배치하고 12대대는 광주시청에 대기하면서 기동타격대 임무를 16대대는 전남대에 잔류하면서 여단 예비대 임무 수행ⓚ
13:30~16:00. 충장로 2가에서 시위군중 운집 시작, 계엄군 시위주동자 색출 및 소요에 가담치 말도록 선무방송, 3공수여단 투입, 중고생 등 300여명 운집, 계엄군에 야유(계엄군 265/1212명, 경찰 163/2395명)ⓢ
15:00. 도청 주변 노동청, 금남로입구, 충장로 입구 3개 방향에 최후저지선 각 설정하고 방어작전 전개ⓟ
15:00. 3공수부대는 데모 진압에 투입ⓕ
16:00. 전남도청 인근 지역에 2~3만명의 시위대가 집결, 돌, 화염병, 쇠파이프, 각목, 칼 등을 소지하고 시위ⓚ
16:05. 국민은행 한일은행 앞 광주역 등 시위군중 1000여명 연좌시위, 도청앞으로 진출하여 산발 시위 전개, 20사단 62연대 병력 1개대 투입(84/1450명)ⓢ
16:30. 무등경기장 앞 광장에서 영업택시 40대 집결하여 광주역 방향 차량시위, 경찰차 10대로 저지ⓢ
16:50~17:15. 국민은행 앞 시위군중 2000여 명이 재집결하여 시위, 계엄군과 대치 투석, 구시청 사거리에서 쇠파이프, 각목 등 휴대한 폭도 150여명이 계엄군과 극렬대치ⓢ
17:30. 대한극장 앞 시위군중 1700여명 집결, 시위 군경과 대치, 20사단 61연대 1개중대 병력 투입(82/1413명)ⓢ
*공수부대는 박준병 장군이 지휘하는 20사단으로 대치, 20사단은 5월 16일에 한미연합사에서 계엄확대 하루 전날 탈퇴, 미국이 군 개입을 승인해 주었다고 비난
18:00. 택시 200여대, 버스 등 차량시위 시작ⓟ
18:00. 양동사거리 일대에 배치되어 시위 진압 작전을 하고 있던 3공수여단 15대대는 광주역으로 이동, 집결지 확보를 위하여 광주시청에서 대기ⓚ
18:30. 무등경기장 앞 영업용 택시 200대 차량 시위, 3열로 지어 전조등 켜고 신역에서 공용터미널간 시위, 차량행렬뒤 폭도 2천여 명이 합류하여 투석 시위, 계엄군이 장갑차로 저지ⓢ
18:40. 택시 및 버스 200여 대가 금남로에서 도청을 향해 차량 경적 시위ⓦ
18:40. 광주시내 곳곳에서 공수부대의 만행을 직접 목격하고 겪은 운전기사들에 의해 무등경기장에서 금남로로 200여대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이자 시위대 분위기 고조ⓖ
18:50. 금남로 광주은행 앞 5만여명 시위, 택시 200여대, 버스, 트럭 등 차량시위 전개ⓟ
19:00. 3공수 12대대는 광주역에 있는 15대대를 지원하고 KBS 광주방송국을 보호하기 위해 광주역으로 이동하여 15대대와 합류ⓚ
19:00~20:30. 가톨릭센터 앞 시위군중 2천여명이 버스 3대 및 택시 30대와 합류, 각목을 휘두르며 투석 시위로 버스 4대 파손, 화물차 1대 방화ⓢ
19:00~20:30. 공용터미날 등 시위군중 5만여명이 시가지 전역 선회시위
-MBC 사옥점거 및 화염병 투척 방화
-누문, 역, 양동, 학동, 산수 등 5개 파출소 점거 및 기물파괴
-광주소방서 난입, 소방차 10대 방화, 3대 탈취하여 가두 질주ⓢ
19:30. 공용터미널 쪽에서 1만여명의 시위대가 수십대의 차량을 앞세우고 금남로 시위대와 합세하자 공수부대와 경찰은 필사적으로 저지ⓚ
19:45. 문화방송국 앞에 모인 5천여명의 시위대는 방송사에 저녁 8시 뉴스시간에 광주 상황을 보도할 것을 요구, 보도가 되지않아 방송국 건물에 화염병을 투척(20:30), 방송국 건물 화재(21:45)ⓚ
19:49. 기동 3중대와 함평 장성부대가 의대 5거리에서 군중에 포위, 계엄군(7공수) 지원 요청ⓟ
20:00. 택시 및 버스 200여 대가 계엄군 및 공수부대원의 진입을 가로막음ⓦ
20:00. 노동청, MBC, KBS, 공용터미널 부근, 전남매일신문사 앞 등에서 수만명의 시위대가 애국가를 부르면서 공수부대와 대치하고 역전파출소, 학동파출소, 광주시청, 방송국, 서부경찰서 등의 피습ⓚ
20:00. 광주역 앞에서 시위대가 휘발유가 가득 든 드럼통에 불을 붙인 다음 계엄군을 향해 굴려 보내고, 트럭 버스 등 차량 돌진 공격ⓜⓚ
20:10. 시민들이 도청을 향해 금남로, 충장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경찰과 대치ⓖ
20:10. 노동청 쪽에서 부근 주유소를 점거한 시위대가 차량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 후 대치하고 있던 경찰 쪽으로 밀어 붙임ⓚ
20:30. 시위대는 광주소방서를 점거하고 소방차 4대를 탈취ⓚ
20:30. 시위대가 역전파출소, 양동파출소, 학동파출소를 점거하고, 일부 시위대는 광주소방서에서 탈취한 소방차 4대로 사이렌을 울리며 가두로 진출ⓚ
20:50. 시위대는 광주시청을 점거, 광주경찰서와 서부경찰서를 점거(22:00), 광주세무서 방화(23:00)ⓚ
21:05. 노동청 앞에서 시위대 버스 1대가 경찰저지선을 뚫고 돌진하여 경찰관 4명 사망, 5명 중상ⓢⓟⓖⓦ
21:00. 택시 200여 대와 버스들은 진입로를 차단하고 공수부대 및 경찰과 충돌ⓦ
21:00~21:45. 시위군중 6천여 명이 MBC 사옥 점거하고 방화ⓦ, 지산파출소 점거, 경찰차 2대 방화ⓢ
21:20. 7공수여단 33대대는 조선대를 방어하라는 명령에 따라 조선대로 복귀ⓚ
21:50. 과잉진압 행위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자 시민들 거센 항의를 하며 광주MBC 건물 방화ⓖ
21:50. 3공수 부대는 실탄을 지급하고 장착을 지시ⓕ
22:00. 전남대 부근에서 광주역 쪽에서 돌진하던 11톤 트럭 1대가 전복돼 공수부대 하사관 1명이 트럭에 깔려 사망ⓜⓚ
22:00. 최세창 3공수여단장은 대대장들로부터 엄청난 수의 시위대에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이라고 보고받고, 광주역으로 집결하여 전남대로 철수를 지시ⓚ
22:00~23:45. 도청 앞 등 시내 각요소에 시위군중 10만 명이 운집
-월산파출소 임동우체국 점거, 양동파출소 방화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 2명 사망, 5명 부상, 경찰 10명 부상, 버스 31대, 승용차 1대 파손
-백운 농성 월산파출소 점거, 시위군중 100여명 담양서 방문 구속학생 석방 요구ⓢ
22:30~02:00. 광주역 인근 시위진압과정 발포로 4명 사망, 6명 총상ⓟ
22:30. 3공수여단장은 시위대 차량 공격에 위협을 느낀 대대장들이 실탄 지급 등 지원을 요청하자 경계용 실탄을 대대에 갖다 주도록 지시ⓚ
23:00. 7공수여단 35대대는 전남도청 앞으로 집결
23:00. 광주역 광장에서 무자비한 유혈진압에 항의하던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로 사망자 다수(2명) 발생ⓖ
23:00.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총상ⓦ
23:10. 제3공수 16대대가 시위 군중에게 포위된 11, 12, 13, 15대대를 구출하기 위해 공포 발사 구출ⓕ
24:00. 시위대의 차량 돌진 공격으로 경찰관과 공수부대원 수명이 사망하는 등 상황이 위급하다고 느낀 지역대장과 중대장들이 실탄 지급을 요청하자 61, 62대대장은 경계용 실탄을 중대장들에게 분배하고, 위급시 사용할 것을 지시ⓚ
사망 9명(경찰 4, 군인 1, 학생 1, 민간인 3)
부상 57명(중상 8, 경상 49)
차량 41대(파손 36, 방화 5)
무기를 든 시위대는 도청을 포위하고 인근 전남의대 12층에 탈취한 LMG 2대를 설치, 도청을 항해 무차별 난사
시위대는 방위산업체인 아세아 자동차 공장을 습격, 군용 및 일반버스 등 200여대를 탈취, 이를 몰고 장성, 화순 등 지를 휩쓸면서 시위책동 및 무기탈취
시위대는 5월 21일 하루에만 광주시 외곽 18개 무기고 및 화약고에서 총기 4900여 정, 실탄 13만여 발, TNT 10여 상자, 수류탄 270여 발을 탈취, 15시경부터 개인화기 및 LMG 기관총으로 무장
계엄군의 공격적 진압으로 저항하는 시민들의 합세로 인해 시위 군중이 계속 증가하여 5월 21일 도청 주변에는 20만 명까지 운집
00:35. 노동청 방면에서 군중 2만여 명이 계엄군과 공방전을 전개ⓖ 광주역으로 철수하던 계엄군이 대검과 곤봉 등으로 시위대 2명 살해ⓦ
00:36~04:40. 시위대 3천여명이 고속버스 3대를 돌진시키며 조선대 정문 돌파를 시도, 7공수여단 33대대는 최루탄을 쏘면서 이를 저지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벌임ⓚ
당시 광주시내 경찰무기는 5월 19일 소산이 완료되었으며, 5월 20일 야간 광주세무서 칼빈 17정이 피탈되었으나 실탄이 없었으며, 이후 나주, 화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피탈되어 시위대의 무장이 이루어짐
02:00 광주세무서에서 폭도 2천여 명이 세무서 난입하고 방화, 무기고 습격하여 칼빈총 17정 탈취(실탄없음)ⓢ
02:18. 시외전화 두절ⓖⓦ
02:45. 전교사는 시위대의 광주교도소 습격 첩보에 따라 31사단 96연대 13/444명이 광주교도소에 배치 완료ⓚ
03:00. 공수부대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7공수여단 35대대는 충장로와 화순으로 통하는 전남도청 좌측 방면에, 11공수여단 61, 62대대는 전남도청 정면 금남로 방면에, 63대대는 전남도청 우측 노동청 앞에 배치ⓚ
03:00~06:00. 도청 광주역 세무서에서 시위군중 4만여명이 시가지 전역에서 철야시위 전개, 도청건물 3동 및 차량 12대 전소, 군인 2명 사망, 5명 부상, 경찰 중상 6명, 민간인 2명 사망, 광주역 KBS 월산동 사무소 방화ⓢ
04:00.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에 등장ⓦ, 이 소식을 들은 시민 수십만 명이 항쟁에 적극 동참ⓖ
04:30. 광주 KBS 건물 방화ⓖⓦ
공수부대는 전남도청 앞 금남로 전면에 11공수여단 61, 62대대를, 노동청 방면에 63대대를, 광주천 방면에 7공수여단 35대대를 각각 배치하여 전남도청 방어를 준비하였다ⓚ
06:00~08:00. 폭도 300여명이 각 가정방문하여 합세 호소, 가로수 절단하여 차량통행 차단, 버스 25대 트럭 4대 탈취, 버스 등 3대에 분승하여 시가지 질주, 버스 고속버스 트럭 등 방화ⓢ
06:25. 가스살포용 500MD 헬기 5대가 전교사에 도착
07:00. 계엄사령부는 광주 관련 소요 사태 발생과 피해상황을 처음으로 발표ⓚ
08:00.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 지역에 진도개(비상경계령) 하나를 발령ⓚ
08:00. 시위대는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진압 명령을 받고 투입된 20사단 병력과 충돌ⓖⓦ 20사단 지휘차량 인솔대는 수백명의 시위대로부터 화염병 공격을 받고 사단장용 짚차 등 지휘용 짚차 14대를 탈취당함ⓚ
08:00. 전남도청 앞에는 수만명의 시위대가 사체 2구가 실린 손수레를 앞세우고 공수부대 만행을 규탄ⓢⓚ
08:00~09:00. 폭도는 차량탈취 가두방송 및 지사 면담 요구ⓢ
-폭도 4명이 탈취 차량에 마이크 설치하고 가두방송으로 시민가세 선동
-도지사는 헬기탑승하여 시민자제 촉구 호소 방송
-1천여 명이 군용차량 습격하여 짚차 1대 및 수류탄 16개 탈취하고 계엄군 4명 중상
-아세아자동차 난입하여 버스 8대 용달차 1대를 탈취하고 시가지 질주ⓢ
08:10. 20사단 61연대가 광주 진입차 공단입구 통과하던 중 시위대 습격으로 차량 14대 등 피탈ⓟ
08:20~08:50. 시내 각종 차량과 아세아 자동차공장, 군용트럭 등 119대 탈취, 나주, 광산, 영광, 화순, 영암 예비군 무기 등 탈취 시도ⓟ
08.50. 20사단 61연대 107/1154명의 선발대가 도착ⓕ
08:58. 버스 2대, 트럭 1대에 탄 시위대 4백여명이 교도소에 접근, 시위대 150여 명이 버스 1대, 트럭 3대를 타고 접근(10:22) 시위대 50여명이 장갑차 1대, 트럭 1대, 군용짚차 1대를 타고 접근(11:02) 경찰 기동순찰차 등 20여대 차량이 접근(15:38)ⓚ
09:00~12:00ⓢ
-금남로에서 폭도 10만으로 증가, 광주 시가지 전역 및 나주 등 인근 지방으로 확산,
-계엄군 장갑차 1대 탈취, 민간차량 버스 62대, 트럭 6대, 승용차 4대 등 파손,
-금성센타 매점 난입하여 전자제품 방화,
-주유소 습격(대창석유, 동아석유, 대중주유소 등) 유류 탈취,
-나주서 금성파출소 습격하여 무기 탈취(칼빈소총 510정/실탄 30600발, LMG 4정/실탄 60000발, AR소총 4정/실탄 1440발, M1소총 255정/실탄 16766발, 수류탄 182개)ⓢ
09:00. 20사단 지휘차량을 타고 온 시위대 3백여명과 고속버스 5대를 타고 온 시위대 3백여명이 아세아 자동차 공장을 점거하고, 장갑차 4대와 버스 등 차량 56대를 탈취하여 광주시내로 진출ⓚ
09:35. 장성 담양 화순 광산 나주 영암 6개서 예비군 무기, 탄약을 군부대 소개 지시
09.36. 경찰국 1중대, 118중대 무기를 전교사 병기창고에 입고ⓟ
10:00. 시위대는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 트럭, 장갑차를 탈취해 광주시내로 몰고 들어옴ⓦ
-아세아자동차 난입, 각종 제작차량 탈취, 군용차량 305대, 장갑차 5대, 일반버스 100대 등
10:15. 도청 앞에서 실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을 맨 앞으로 배치ⓖⓦ
10:19. 광주세무서 건물 전소ⓖ
10:57. 시위 군중 20만명 추산ⓟ
11:00. 11공수 63대대장은 대대장 지프차에 보관하고 있던 대대 경계용 실탄을 중대장들에게 1인당 10발씩 지급하고 위급시에만 사용할 것을 지시ⓜⓚ
11:10. 대형헬기가 도청광장에 도착ⓖⓦ
11:30. 계엄군은 광주-화순간 도로에서 폭도 버스 1대를 파괴하고 TNT, 총기 및 실탄을 회수하고 17명을 사살ⓣ
11:46. 31사단 소속 교도소 경계 병력에 실탄을 공수ⓚ
12:00. 계엄군 철수, 12:00~14:00. 경찰 단독 대치ⓟ
시위대는 화순광업소 및 광주 소재 한국 화약탄약 보급소에서 폭약, 뇌관, 도화선 등을 탈취한데 이어 광주, 담양, 장성, 나주 등 경찰서, 파출소 및 예비군 무기고 등에서 무기, 실탄을 탈취하고 시내 곳곳에서 총격전 및 방화
12:00~14:00 광주 나주 함평 화순 광산 지역에서 폭도 10만이 무기탈취 도청 점거 기도ⓢ
-폭도 3만여 명이 시체 2구를 실은 리어카를 앞세우고 군용짚차 및 장갑차 등 분승 시위
-폭도차량이 광주교도소 입구 진출, 폭도 10만명, 화염병 투척하며 도청 점거 기도
-폭도 200여명이 탈취 차량에 분승하여 나주 함평 목포 등지 순회하며 주민 봉기 선동
-화순서 중앙파출소(총기 212정/실탄 81,908발, 수류탄 182발), 동면지서 (총기 370정/실탄 23,463발), 화순광업소 폭약 2925개(13상자) 등 8곳의 무기와 화약 탈취, 유류(휘발유 647리터, 경유 199리터) 탈취
-폭도 100여명 화순읍 중앙파출소 방화ⓢ
12:00~14:00. 전남대 앞, 시민 2명 총상으로 사망
12:00. 시위대는 장갑차 트럭 버스 택시 등 백여 대의 차량을 전면에 내세우고 공수부대의 저지선을 압박하여 10미터 정도까지 접근, 시위대의 장갑차 1대가 공수부대 쪽으로 돌진하여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사망ⓜⓚ
12:10. 전남대 진출을 시도한 시위대가 전남대 앞에 배치된 공수부대원들의 저지에 밀려 신안동 굴다리까지 후퇴ⓚ, 공수부대의 진압 도중 시민 4명 사망ⓦ
12:55. 데모대 도청으로 진격, 계엄군 뚫고. 계엄군 사격. 군인 2, 시민 2 쓰러짐ⓣ
12:58. 금남로에서 장갑차 2대로 일제공격 개시로 금남로 방어선 무너지고 계엄군 전원 도청 안으로 후퇴ⓣ
12:59.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를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12:59~17:30. 계엄군의 집단발포, 경찰해산 및 계엄군 퇴각, 35명 이상이 총상으로 사망ⓟ
13:00. 도청 직원들이 선무활동의 일환으로 스피커를 통해 애국가를 방송하며 해산을 호소ⓚ하는 가운데 시위대가 장갑차와 버스 등 차량 돌진을 계속하자 공수부대 장교들이 집단적으로 발포ⓜ
13:00. 계엄군이 시위대에 집단 발포ⓟ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가 사격을 시작ⓖⓦ
13:00. 시위대 80여 명이 차량 3대를 타고 와 광산 하남파출소에서 칼빈 9정을 탈취, 고속버스 트럭 등 10여대의 차량에 탑승한 시위대가 함평에 도착하여 군중 시위를 벌이고 신광지서에서 총기 1백여정, 실탄 2상자를 탈취ⓚⓣ
13:00. 화순광업소 무기고에서 칼빈 64정 피탈, 광산군 하남면 파출소를 침입하여 칼빈 9정 탈취ⓟⓣ
13:10. 성남비행장을 출발한 61항공단의 수송용 UH-1H 헬기 10대가 전교사에 도착ⓚ
13:15. 진압부대 도청 안에서 부대 재정비 완료ⓣ
13:20. 청년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계속 쓰러짐ⓖ
13:30. 남평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56정/실탄 12,884발, M1소총 15정/실탄 1,376발, LMG 1정/실탄 1,500발, AR 1정/360발 탈취, 신포 예비군 무기고에서 칼빈 28정/실탄 5,840발, M1 28정/실탄 400발, AR 1정/실탄 360발 탈취ⓣ
13:30. 도청에 화염병 투척 점거 기도, 도청 직원 전원 피신, 도지사 등 3명만 잔류
13:30. 도청 앞에서 폭도가 발사한 총기로 중사 1명이 사망ⓣ
13:30. 시위대는 무기고 및 화약고에서 무기와 탄약 탈취 시도ⓟ 나주서 남평지서에서 최초 무기실탄 탈취 발생
13:35. 화순 소재 4개 파출소 등에서 총기 460정과 실탄 1만 발을 탈취ⓜ
13:50. 화순 본서 예비군 무기고에서 칼빈 98정/실탄 66,144발, M1 106정/실탄 10,605발, LMG 4정/2,750발, AR 6정/실탄1,440발, 수류탄 229개 피탈ⓟⓣ
14:00. 국방부장관 주재 회의에서 계엄군 외곽 철수와 자위권 발동이 최종 결정,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자위권 보유를 천명하는 경고문 발표(19:30) 전교사령관은 예하 부대에 자위권 행사 지시(20:30), 20사단에 자위권 발동 지시하달(21:00)ⓚ
시위대는 나주시 화순군 등지에서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
14:00. 나주 남평지서 무기고에서 칼빈 20여정과 실탄 7-8상자를 탈취하고 나주 경찰서에 진입하여 무기고를 파괴하고 칼빈 5백여정, M1소총 2백여정, 실탄 4만6천발을 탈취ⓚ
14:00. 나주 본서 38구경 10정 45구경 13정 카빈 63정, 영산지서 45구경 1정, 카빈 6정, 금천지서 45구경 1정 카빈 4정, 영광지서 카빈 4정, 중앙파출소 카빈 4정, 금성파출소 카빈 5정, 다시지서 카빈 3정/실탄 270발 탈취ⓣ
14:00. 화순 능주지서 카빈 4정, 화순 동복지서 카빈 960정 45구경 21정, 화순 동복 예비군 무기고 카빈 296정/실탄 17,760발, M1 소총 72정/실탄 3,360발, LMG 1정/실탄 1500발, AR 1정/실탄 360발 탈취ⓣ
14:15. 도지사가 경찰헬기에서 시위해산을 종용하는 설득 방송ⓖⓦ
-(14:00경)헬기에서 전단을 살포를 목격, 계엄사령부가 시민들에게 전하는 공고문
14:30. 나주 금성 예비군 무기고 카빈 510정/실탄 30,000발, M1 소총 255정/실탄 16,766발, LMG 4정/실탄6,000발, AR 4정/실탄1,440발 탈취, 나주 영광 예비군 무기고 카빈 57정/실탄 7,800발, M1 소총 5정/실탄 5,088발 탈취ⓣ
14:30~16:00. 폭도, 경찰서 등 각기관 무기고 기습, 무기와 탄약 등 탈취ⓢ
-나주서 일신방직 등 총기 1700정 / 실탄 47,000발 , 나주서 무기고, 칼빈 301정 / 실탄 19,320발
-화순 역전 파출소 총기 207정 / 실탄 18450발 등 11곳 무기 탈취
-무진주유소. 대한석유 등에서 휘발유 9198리터, 경우 1189리터 유류 탈취
-나주 남평 등 3개소에서 트럭 3대, 버스 10대 파손ⓢ
14:35. 시민들이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14:40. 시위대는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 입수ⓖⓦ
14:45. 61항공단 203대대장이 조종하는 UH-1H 헬기가 전남도청 상공에서 공중정찰 중에 시위대의 대공사격으로 6발이 헬기에 명중ⓚ
14:45. 전남의대 옥상 및 전일빌딩에 LMG 거치ⓣ
14:50. 공수부대는 전남도청 본관과 신관, 전남일보, 수협 도지부, 상무관 등 인근 건물 옥상에 일부 병력을 배치하여 도청부근으로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을 가함ⓚ
14:52. 국민은행 앞에서 군중이 AR 1정, 칼빈 40여정에 정전, 도청 앞쪽으로 거치ⓟ
15:00. 광주공원에서 총기를 분배받은 시위대가 지프차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상황을 전파ⓜⓚ
15:00.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한 시위대가 충금지하상가 사거리에 도착하여 20여 정의 총기를 분배ⓜ 화순경찰서 등에서 무기를 탈취한 시위대도 학동 석천다리, 지원동에서 무기를 분배하여 일부 무장 시위대는 도청 쪽으로 진출ⓚ
15:00~15:03. 학생 20명 총기(칼빈 1정, 실탄 30발)를 휴대하고 우체국 쪽으로 진격ⓟ
15:15. 우체국 쪽에서 일부 시위대는 카빈과 실탄을 휴대하고 전남도청 쪽으로 진출하면서 총격전을 벌임ⓜ
15:35. 화순광업소에서 카빈 1108정/실탄 17,760발을 탈취, 화순 동면지서에서 M1 72정, 카빈 296정, AR 1정, LMG 1정, 실탄 1만4천여 발 탈취ⓜⓚ
15:48. 공수부대원들이 주요빌딩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
15:50. 광주통합병원 상공에서 선무방송을 하던 같은 61항공단 방송용 헬기도 6발의 총격을 받음ⓚ
16:00. 진도개(비상경계령) 둘을 발령하고 대공경계를 강화, 전교사령관은 2개 공수여단에 대한 직접 지휘를 시작ⓚ
16:00. 광주은행 본점 부근에 트럭이 도착하여 시위대에게 30여정의 카빈을 분배하고, 일부 시위대는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옥상에 LMG 2정을 설치하고 전남도청과 군 헬기를 향해 사격ⓜⓚ
16:00. 화순군 나주군 지역에서 무기를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을 전개ⓖ
16:00. 7공수, 11공수여단이 도청에서 조선대로 철수ⓕ
16:00. 각 서 동원부대 동원해제ⓟ
16:00. 경찰, 계엄군 전원 철수ⓟ
16:00~16:50. 무장폭도, 도청 등 시가지에서 총기 난사 및 무기고 습격, 도청 완전점거, 광주 전지역 행정 기능 마비ⓢ
-무장폭도는 짚차에 수류탄 1상자 LMG 1정 설치하고 도청으로 진출 점거 기도
-국민은행 앞에 다이너마이트 1차량분 놓고 도청 폭파 위협
-호남전기 칼빈 180정/900발, 영암경찰서(칼빈 42정, M1 14정, LMG 3정, BAR 3정, 권총 10정) 무기 탈취
-광주 연초제조창 칼빈 101정, 전남방직 칼빈 188정/60발, 해남 계속지서 수류탄 47발 등 무기고 습격 총기 탈취
-민간 버스 111대, 경찰 짚차 1대 파손ⓢ
16:30. 광주시 동구 소태동 TNT 37,000여 개 탈취ⓣ
16:30. 3공수여단 15대대를 선두로 전남대를 출발하여 17:20경 광주교도소에 도착ⓚ
16:30. 전남도청 상황실이 폐쇄되고, 17:15경에 전남도경 상황실이 폐쇄되고 도경 지휘부가 광주공항으로 이동, 경찰병력도 철수를 시작ⓚ
16:43. 학생들이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를 설치ⓖⓦ
광주교도소가 무장시위대에 습격당한 것은 공식적으로 5차례가 있었다. 당시 광주교도소에는 간첩 및 좌익수 170명을 포함하여 2700여 명의 죄수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교도소를 습격하다가 사살된 무장시위대는 총 10명으로 추정
17:00. 광주공원에서 총기 사용 교육을 받은 시위대들이 조를 편성하여 정찰, 도청 감시, 외곽도로 경계 등의 임무를 부여 받고 시내 요소에 배치ⓜⓚ
17:00. 11공수여단 3개 대대와 7공수 여단 35대대는 장갑차를 선도로 전남도청을 출발하여 조선대로 철수ⓚ
17:00~20:00. 무장폭도, 장갑차로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 및 탈취 차량으로 전남지방 전지역 질주하며 폭동 선동ⓢ
-장갑차 등 차량 9대로 광주교도소 총격 난사 기습 기도로 주동자 1명 검거
-조선대 등에 집결해있는 계엄군에게 난사, 탈취 총기하여 가세시민에 지급, 각기관 무기고 습격
-나주 반남지서 칼빈38정/실탄270발, 해남 옥천지서(M1 소총 555정, LMG 1정. 탄창 30개), 장성황동지서 M1 13정, 장성 진원지서(LMG 1정, AR소총 1정, 칼빈 47정, M1소총 1정) 등 각기관 무기고(화순광업소 예비군대대, 광주 대한통운, 광주고교, 강진 성진지서) 기습
-한국낙농 급습하여 매일우유 900상자, 요구루트 100만원 상당을 탈취ⓢ
17:05. 7공수, 11공수여단은 실탄 분배를 지시ⓕ
17:21~17:34. 기동대 철수지시 및 경비본부 철수ⓟ
17:25. 3공수여단은 전남대에서 교도소로 이동ⓕ
17:30. 제7, 11공수여단이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17:40. 광주시 지원동 종점에서 탈취 무기 공급, 광주공원에서 나주지역에서 올라오는 무기 공급ⓣ
17:50. 광주시 외곽도로 차단을 지시하다(19:00. 차단완료)ⓕ
18:50. 20사단 61연대를 광주-목포 및 광주-전주간 도로 차단을 위해 송암동과 광주 톨게이트에, 62연대를 통합병원 입구와 송정리 비행장 및 전교사에 배치ⓚ
19:20. 506항공대대 소속 500MD 헬기 4대가 전교사에 도착ⓚ
19:30. 무장한 시민군이 교도소를 기습하고 장갑차 등 차량 9개로 와서 총격을 가함, 수비병력이 교전 끝에 격퇴
19:30. 차를 타고 교도소를 지나가던 담양 주민 4명이 총격을 받아 2명 사망ⓟⓚ
19:40. 7공수여단 차량제대가 전남대 병원, 남광주시장, 숭의실고 부근을 지나면서 시위대의 사격과 차량 돌진 공격을 받아 군 차량 3대가 전복되고 장교 1명과 사병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
20:00.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접수, 계엄군이 오후 5시경부터 순차적으로 전남도청에서 철수ⓜ
20:00~23:00. 광주 목포에서 식료품점 및 주유소 등 급습하여 생필품 탈취ⓢ
-삼립식품 식빵 676상자, 영일식품 식빵 86592개, 대청석유, 농성주유소에서 휘발유 6240리터, 경유 9046리터 탈취
-광주지법 목포지원, 광주지검 목포지청 기습하여 기물 파손, 목포 KBS, MBC 사옥 기습하여 유리창 등 파손
-목포서 광주 계림파출소 목포 항동파출소 목포 해경지대 등 기습하여 기물 파손 및 경찰차 6대 탈취ⓢ
*계엄군, 외곽지대로 재배치, 선무방송 등으로 자제 촉구 및 인근 도시로 확산 예방에 주력
20:30. 각 부대에 자위권 행사를 지시하고 실탄을 장전, 전교사는 군부대라는 것을 경고 후 발사ⓕ
21:00. 광주 외부로 나가는 교통로를 봉쇄하여 폭동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광주 외곽도로를 완전 차단
23:15. 전교사 및 전남대 주둔 병력에 실탄을 장전하고 유사시 발표 명령을 하달ⓕ
사망: 54명 (군인 2, 학생 8, 민간인 44)
부상: 343명 (중상 62, 경산 281)
총기: 4종 3,938정, 실탄: 268,450발, 수류탄: 382발 피탈
차량: 468대 탈취
무장시위대는 도청 등 관공서를 완전히 점거, 차량운행허가, 보도휴대증을 발급하고 계엄군의 진주에 대비 요소마다 파괴된 차량으로 대형 바리케이트를 설치,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시키면서 시민들을 선동하다
00:40. 시위대가 차량 6대에 분승하여 광주교도소에 접근, 3공수여단 병력과 교전ⓜⓚ
00:40~00:50. 차량에 탑승한 무장시위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주둔지역에 사격을 가하면서 바리케이트에 접근하자 계엄군이 응사하여 1명을 사살하고 1명을 체포하다
00:00~08:00.ⓢ
-영광, 무장폭도 25명이 경찰서에 투항 무기( M1 11정, 칼빈 1정, 수류탄 10개)회수, 무장폭도 군부대(대대) 총격 기습
-함평, 무장폭도 30명 군청기습 점거, 계엄해제 시민 궐기 선동
-완도, 무장폭도 상가 유리창 파손 난동
-목포, 무장폭도 20명 파출소 기습 무기탈취 기도 후 도주(무기 대피)
-무장폭도, 차 6대로 다이나마이트 탈취 강진방향 도주, 경찰서 기습 탄띠 146개 탈취
-송정, 무장폭도 300명 버스 14대 트럭 6대로 송정역에서 광주로 진출, 계엄군 제지로 분산, 무장폭도 300명 군용차 45대 송정역 집결 시위 공포 발사, 시위군중 2000명 도청 운집
*00:05. 완도경찰서, 06:04. 강진경찰서 점거되거나 파괴ⓚ
*시장, 부시장 선무방송, 계엄군 경고문 3종 공중 살포. 1군 사령관 자제촉구 선무활동ⓢ
01:00. 효천역 부근 광주쪽에서 버스 5-6대에 탑승하고 온 시위대와 두 차례의 교전으로 시위대 10여명 사상ⓚ
04:55. 20사 60연대 87/1563명이 도착ⓕ
05:00. 송암동, 광주에서 목포로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일가를 매복중이던 61연대 수색중대 병력으로부터 시위대로 오인되어 사격을 받아 운전자는 사망하고 부상자 3명은 헬기로 후송ⓚ
06:00. 주남마을 일대로 철수한 7, 11공수여단은 광주-화순간 국도주변에 배치하고 도로를 차단ⓚ
06:30. 광주공원에서 무장시위대는 차량에 일련 번호와 임무를 부여하고, 금남로 화정동 산수동 학동 백운동 서방삼거리 신역 등에는 무장시위대와 차량을 배치하여 경계ⓚ
07:00. 20사단 60연대 88/1514명이 성남비행장을 출발하여 송정리 비행장에 도착하여 격납고에서 대기ⓚ
08:45~09:35. 광주 관광호텔 전일빌딩 전남의대 옥상에 기관총 설치ⓢ
-폭도 50명이 트럭 2대에 분승, 극락교 통과 요구, 계엄군 불응에 발포하고 도주
-광주공원에서 폭도들 사격술 및 폭발물 제조 훈련 실시
-해남에서 폭도 150명이 버스 3대, 트럭 1대에 분승, 해안 소재 예비사 대대 기습
-광산에서 서창 미륵리 아파트 침입하여 군인가족 색출
-광주교도소, 차량에 LMG 장치, 교도소 기습, 계엄군과 총격전 전개, 민간인 사망 8명, 부상 10명ⓢ
09:00.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이 집결ⓖⓦ, 군용헬기가 공중을 선회하며 계엄사령관의 경고문 공중 살포ⓚ
09:00. 지역 유지와 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구성ⓚ
09:00. 2.5톤 트럭에 탑승한 무장시위대 6명이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교도소로 접근, 3공수여단 11대대에서 즉각 응사하여 3명이 사망, 고속버스 2대, 트럭 1대, 픽업 1대 노획, LMG 1정, M1 소총 5정, 카빈 4정, 실탄 400발 회수ⓜⓚ
09:25. 폭도들이 계속 경찰관서 습격을 시도함으로 치안본부로부터 경찰관 자위권 발동 지침 하달ⓟ
10:00. 교도소 옆 진입로 입구에서 트럭을 타고 통과하던 일가족 3명이 3공수 12대대 병력의 총격을 받아 1명 사망ⓟⓚ
10:00~11:45. 5.18 광주사태 수습대책위원회 구성, 시민학생 대표 및 7개 요구사항 결의ⓢ
-광주 일원에서 폭도들이 경찰 및 공수복 착용 복면, 군용차량 이용 민가 및 방위산업체 기습 약탈
-무안 경성지서를 기습하여 수류탄 180발, 칼빈실탄 9,480발, M1실탄 10,750발을 탈취
10:20. 11대대 지역에서 소방차에 탑승하여 공격해오는 무장시위대 4명을 체포하다
10:30. 군용헬기 공중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
10:30. 전남지역 경찰, 예비군, 군인에 자위권 발동을 지시(2군 작상전 466호)ⓕⓚ
11:25.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을 호소ⓖⓦ
12:00.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로 게양ⓖⓦ
12:00~15:00.ⓢ
-전화국, 시외전화선 복구 강요, 불응시 폭파 위협
-수습대표 계엄사 방문, 7개 요구조건 수락, 총기는 5월22일 17시한 반납요구, 수습위는 총기회수 대책위 구성결의
-폭도, 화순에서 광주로 진입, 계엄군이 저지, 민간인 1명 사망
-송정, 폭도 300명 무기휴대하고 군에 투항 무장해제, M1소총 35정/27발, 칼빈 10정/38발, 수류탄 1개 등 회수
12:12. 함평경찰서 14:58에 목포 연동지서가 점거되거나 파괴ⓚ
13:30.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에 방문하여 7개항의 수습안을 전달ⓟⓖⓦ 동일 연행자 848명 석방ⓚ
14:00. 시내요소 고층건물에 병력을 배치하고 동시에 기관총을 설치ⓟ
14:30. 광주시장이 헬기에서 호소 전단을 살포ⓚ
14:58. 목포 연동파출소와 소방소 기습하여 M1소총 120정, 칼빈소총 750정 및 소방차 1대 탈취
15:00~20:00.ⓢ
-국무총리 서리 헬기편 광주사태 현장답사 후 담화문 발표
-도내일원, 무장폭도 도내 주민 살상, 군부대. 관공서 기습, 무기.탄약 탈취 만행
-장성, 연대, 고대생 500명 가세차 장성에서 광주로 진입을 제지, 30명 광주 잠입
-광주 지산동, 광주 법원앞 민가 침입하여 생필품 및 현금을 약탈
-나주, 무장폭도 100명이 군부대에 투항하여 무장해제, 칼빈 8정/실탄 121발, M1소총 4정 등 회수
-영암, 무장폭도 200명이 영암경찰서 기습하여 칼빈 등 200정 탈취
-도청앞, 수습대책위는 계엄사와 협상 결과 보고 대회를 개최ⓢ
15:08. 서울서 대학생 5백여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
15:20. 목포경찰서, 17:37. 해남경찰서, 18:40. 화순 예비군 중대가 점거되거나 파괴ⓚ
15:58.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를 개최ⓖⓦ
16:30. 20사단 60연대 2, 3대대가 송정리 일대에 진입, 도로망을 봉쇄한 후 송정리역 부근에서 위력 행진ⓚ
17:18. 수습위 대표들은 시민궐기대회에 나가 상무대 방문결과를 보고ⓖⓦⓚ
17:37. 해남에서 무장폭도 50명 총기난사 해남경찰서 점거ⓚ
17:40. 도청광장에 시체 23구가 도착ⓖ
17:50. 계엄군이 광주통합병원을 장악ⓚ
18:00. 20사단이 통합병원 진입로 확보를 위해 1km 전진하며 사격, 작전 중 지역 주민 8명이 사망ⓦ
19:00. 동양방송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중간조사 결과 뉴스 보드ⓦ
19:20. 국무총리서리 특별담화문 발표, 광주시내는 병력도 경찰도 없는 치안부재 상태이며 일부 불순분자들이 관공서를 습격, 방화하고 무기를 탈취해서 군인들에게 발포했다는 내용ⓚ
20:00. 임시학생수습위원회 결성, 시민수습위는 계엄당국과의 협상을 학생수습위는 대민업무을 담당ⓚ
20:00~22:00.
-송정, 연.고대생 30명이 광주에 잠입, 시위대 가세
-광주교도소, 무장폭도 다수 교도소 기습 기도
-상무5거리, 유진온천 옥상에 기관총 설치, 계엄군 진입 경계 근무
-수습대책위, 계엄사와 2차 협상, 협상 결렬
21:30. 박충훈 신임국무총리는 "광주는 치안 부재상태"라고 방송ⓖⓦ
22:30. 시위대는 숭의실고, 수정아파트 옥상, 삼익맨션 옥상, 신우아파트, 서부경찰서 옥상에 LMG 설치ⓚ
사망 17명 (군인 3, 학생 1, 민간인 13)
부상 157명 (중상 20, 경상 137)
총기 870정 (칼빈 750 M1 120) 실탄 20,590발
차량 6대
당국과 유지들의 선무활동으로 광주를 제외한 전지역이 질서를 회복하기 시작하였으나 일부 시위자들은 관공서를 계속 장악하고 소위 "시민군"을 편성 조직적 저항태세를 강화하는 등 장기전 시도(5.23.~5.24.)
00:30~05:00.ⓢ
-함평, 계엄군 문장고개에서 행인 등 대상 금품 탈취, 계엄군이 1명 검거ⓟ
-무안청계, 무장폭도 32명 군부대에 투항, M1소총 7정.실탄 28발, 칼빈 5정.실탄46발 회수
-함평, 무장폭도 30여명 군부대 사격, 군응사 사살 2명, 생포 2명, 민간인 2명 사망
-목포, 민가침입, 강도, 약탈 자행, 현금 40만원, 다이어 1개, 로렉스시계 1개 등ⓟ
06:00~12:00.ⓢ
-도청앞, 무장폭도 시체 59구 전시후 호별 방문 장례비 강제 징수ⓟ
-광주공원을 폭도 보급 기지화 작업
-전남대정문, 계엄군 짚차에 총격, 운전병 1명 사망
-곡성, 무장폭도 40명 곡성 잠기파출소에 투항, 무장 해제, 칼빈 160정. 실판127발 등 회수
-군부대 등 본격 선무활동, 경비행기 5대 동원, 선무전단 10만매 살포 및 선무 방송
-전남일보앞, 폭도중 일부 전남일보 사옥에 온건파 수습 본부 설치
-무기 자진회수 활동, 소총 1000정, LMG 3정, 실탄 30000발 등
-도청 구름다리 아래 시체안치소 설치, 학생들 자체 수습 임무 무여 및 수습기구 설치
06:00. 광주시내 일원에서 남녀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동참하여 청소를 실시ⓚ
07:00. 시내 병원에 분산, 안치되어 있던 사체를 모아 전남도청 앞에 사체 59구가 전시ⓚ
08:00. 학생과 시민들이 금남로 일대 등 자발적 청소에 나섬ⓖ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08:00. 트럭에 탑승한 무장시위대 6명이 교도소로 접근하자 11대대에서 응사하여 2명을 사살
09:35. 전남도청에 학생수습위원회 본부가 설치되어 무기 회수 활동을 전개ⓚ
10:00.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서 집회를 개최ⓖⓦ
10:00. 광주경찰서 전 직원 상무동 파출소 집결을 지시ⓟ
10:00. 변전소 확보를 위해 31사단 병력이 광주변전소에 3공수여단 병력이 계림변전소에 투입ⓚ
10:15. 학생수습위가 자체 무기회수반을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을 시작ⓖⓦ
10:20. 소방차에 탑승한 무장 시위대가 광주교도소 부근에서 3공수여단 11대대와 교전 끝에 4명 체포, 소방차 회수ⓚ
10:50. 해남 황산만에서 무장 시위대 40여명이 도로를 차단한 계엄군과 교전하여 시위대 1명 사망, 2명이 부상ⓚ
11:45. 도청과 광장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를 게시ⓖⓦ
12.00. 계엄사령관 경고문 발표,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들에 의하여 조종, 집결 지역에 있는 선량한 시민은 위험, 즉시 대열을 이탈, 집과 직장으로 복귀 요망ⓢ
12:30~19:00ⓢ
-공단입구, 무장폭도 60명 바리케이트 설치, 진지구축
-광주, 무장폭도 34명 군부대에 투항, 칼빈 1정, M1 1정 회수
-도청앞, 무장폭도 1000여명 학생, 깡패간 의견대립 충돌
-수습위 10명 계엄분소 방문, 무기 100정 반납, 계엄당국 18:00한 무기반납 시간 연장
-도청, 무장폭도 회수 무기 재지급으로 극렬 시위 재현, 계엄 당국과의 협상결렬
-광주, 무장폭도 11공수 여단 습격기도, 폭도 19명 살상, 민간인 17명 사망
-월산동, 무장폭도 10명이 계엄군에 투항하고 무장해제, 칼빈 5정. 실탄 300발, M1소총 5정 등 무기 회수
13:00.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을 가하여 17명이 사망ⓟⓖⓦ 주남마을 부엉산 아래 광주-화순간 국도를 진행하던 미니버스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자 부근을 순찰중이던 62대대 중대원들이 집중 사격ⓚ
15:00.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5만여명의 시민이 모여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계엄사는 '경고문' 전단을 시내전역에 살포ⓖⓦⓚ
16시경 20사단 60연대는 송정리에서 상무대로 이동, 61연대는 7, 11공수여단 임무를 인수하여 주남마을에서 광주-화순간 도로를 봉쇄, 62연대는 3공수여단의 교도소 방어 및 광주-화순간 도로 봉쇄 임무를 인수, 전교사 예하 학교 병력은 금당산, 톨게이트, 상무대, 통합병원, 극락교 일대를 점령하고, 3, 7, 11공수여단은 광주비행장에 집결하라는 계엄군 배치조정 명령이 하달ⓚ
19:00. 2.5톤 트럭 1대에 탑승한 무장시위대 40여명이 광주교도소 부근에서 3공수여단 11대대와 교전 끝에 시위대 1명 사망ⓚ
19:00~19:40. 헬기 공수작전 후 철수 중 트럭에 탑승한 무장시위대의 사격을 받고 즉각 응사하여 1명을 사살
19:00~23:00 계엄군은 도청 탈환을 목표로 외곽으로 부터 시가지 압축작전 개시ⓢ
-무장폭도는 군진입 작전 재개에 대비 탈취 차량 219대 활동 정비, 노동청 재향군인회관 옥상에 LMG설치, 주동자 등 도청철수, 지휘장소 이동
-영암, 무장폭도 계엄군에 투항, 무장해제, 총기 156정/실탄 26500발 회수
-광주, 광주시 자체수습책 강구, 동 단위 자위대 편성, 동장 책임하 무기 회수
-보성, 무장폭도 94명 계엄군에 투항, 무장해제, 칼빈 29정/27발, M1소총 39정/71발, LMG 1정 등 회수
-목포, 폭도 700여명 시가지에서 오토바이 30대 호위하여 햇불시위 전개
-광주, 무장폭도 6명, 아세아자동차 기습 장갑차 1대 탈취
-나주, 무장폭도 30명이 면사무소에 투항하고 칼빈소총 6정을 회수
-영산포, 무장폭도 예비군 중대에 투항하고 무장해제, 칼빈 45정, MI소총 16정, 수류탄 1발 등 회수
19:40. 최초 석방자 33명이 도청광장에 도착ⓖⓦ
20:30. 동명, 방림, 양림 등지에서 가정집에 무장강도들이 침입, 현금과 귀중품을 여러집에서 탈취ⓟ
23:00~24:00. 계엄군의 적극적인 선무 활동과 시가지 압축작전 전개로 무장폭도 투항 및 무기자진 반납ⓢ
사망 11명 (학생 3, 민간인 8)
부상 73명 (중상 12, 경상 61)
08:00~10:30. 시민 및 학생 수습대책위 공동명의 자체 호소 등 내용 유인물 제작 살포ⓢ
-계엄당국, 무기자진 반납시간 12:00로 재연장 조치
-배고픈다리 및 학동 교량에서 계엄군이 폭약장치 제거 조치
09:00. 부대 배치조정, 20사 교도소 및 외곽도로 봉쇄, 3, 7, 11 공수는 1전투비행단에 집결ⓕ
09:55. 호남고속도로 광주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31사단 96연대 3대대 2/29를 전교사 예하 기갑학교 병력이 오인사격으로 사병 3명이 사망하고 민간인과 군인이 부상ⓚ
10:00. 수습대책위원들이 개엄분소를 다시 방문하여 수습 대책을 논의
10:50. 20사단 61연대는 전교사 보병학교 및 기갑학교 병력에 지역을 인계하고 주남마을로 이동ⓚ
12:30. 송암동 등, 96연대 3대대 병력 복귀시 매복중에 있던 계엄군과 오인 교전, 사망 3명. 중상 7명ⓢ
-11공수단 병력 철수 시 보병학교 병력이 차단임무 중 폭도로 오인 교전으로 6명 사망하고 30명 부상
12:30. 20사단 62연대는 전교사 숙영지를 출발하여 광주교도소에 도착하여 3공수여단과 임무를 교대
12:30~21:00. 도청 민원실에 적재, 비축해둔 무기 회수 조치, 총기 3000정, TNT 등ⓢ
-도청앞, 폭도 15000여명 집결, 시위 학생이 데모일지 및 공수부대 투입 상황 보고
-남경, 이동중인 11공수단 병력에 차단근무중인 장교가 폭도로 오인총격, 희생자 없음
-목포역, 고교생 2000여명 목포역전 집결, 김대중 석방 등 구호 제창, 가두 시위
-광주, 전일빌딩 시민대표, 폭도들로 부터 무기 회수, 칼빈 300정, LMG, TNT, 수류탄 등 회수
-도청, 강경 폭도 실권 장악하고 요구사항 결의
-무장폭도, 시가일원에서 계엄부대 이동시 난사하여 계엄군 39명 부상
13:20. 제11공수 부대원들이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하여 1명이 사망ⓖⓦ
13:30. 주남마을을 출발한 11공수여단이 트럭을 타고 효덕국민학교 삼거리 부근에 있는 무장시위대 10여 명을 발견하고 촟
14:00. 송정리 비행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20사단 60연대는 상무대로 이동ⓚ
14:20. 송암동에서 제11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이 발생하여 9명 사망하고 40여명 부상ⓦ 이후 오인사격 화풀이로 인근 무고한 주민들 다수 살상ⓖ
14:50.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 수습대책위를 성토ⓚ
15:30. 폭도들이 공수부대 복장으로 위장 강도ⓟ
18:49. 전교사는 확인사격을 지시, 수하 불응, 응사시ⓕ
사망 19명 (군 14, 학생 2, 민간인 3)
부상 31명 (중상 9, 경상 22)
일부 폭도들은 도청내에서 내분이 발생 상호 총격전을 벌려 살상하는가 하면 탈취한 무기로 평소 원한관계에 있는 민가에 침입, 일가족을 몰살시키거나 금품을 탈취하는 등 만행을 자행하므로써 사태가 다시 악화(5.25.~5.26.)
04:00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 재진입작전 계획 수립을 지시, 육본 작전지침인 상무충정작전 계획을 작성ⓚ
08:00~14:00.ⓢ
-도청내, 무장폭도 강경파간 내분 발생, 총격전으로 민간인 2명 사망ⓟ
-종교인, 교수 등 포함 수습 대책 위원회 재구성
-도청앞 광장에서 시체 65구 안치
-황금동, 무장폭도 금은방 및 병원을 침입하여 현금 300만원 탈취ⓟ
-목포, 목포 거주 기독교인 600명 가두 시위, "학살 군경 처단하라"
-광주 남동성당, 재야 강경 저항세력 남동 성당에서 회합, 시위 배후 선동
11:00.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와 광주사태 구호대책비 1천만원이 전달ⓖⓦ
14:00~22:30.ⓢ
-금동제일교회, 종교인 중심 무기회수 결의
-목포역전, 시민 학생 5천여 명 집결하여 구호제창 및 농성, 가두시위
-지원동, 무장폭도 민가에 침입하여 1가구 3명 피살ⓟ
-5만여 군중 도청앞 집결, 민족수호 시민 궐기대회 개최
-최규하 대통령이 현지에 도착하여 상황 파악 후 상경, 특별 담화문 발표
14:30. 주영복 국방부장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하여 상무충정작전 계획을 보고ⓚ
14:30. 계엄사 탄약검사반이 은밀히 전남도청에 투입되어 수류탄 279발, 최루탄 170발을 분해ⓚ
15:00.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 도청앞 광장에서 희생자에 대한 장례식을 거행한다는 명목으로 약 10만명의 인파가 운집ⓟ
16:00. 도청현황, 폭도들이 계속 점거하고 시가는 폭도들의 차량만 운행ⓟ
17:00. 재야 민주인사들은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채택ⓖ
17:20. 시민들은 검은 리본을 달고 계엄 철폐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가두 행진ⓚ
21:00. 최규하 대통령이 담화문을 방송을 통해 발표, 대화로 해결하고, 최대한 관용을 베풀고,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사태를 수습하자는 내용ⓚ
21:10. 학생수습대책위원들이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 등을 논의ⓖⓦ
22:00. 민주시민투쟁위원회를 새로이 구성하여 무기 재분배, 계엄군 재진입에 대비한 외곽 경비 강화 등 무장 투쟁 준비ⓚ
사망 1명 (군)
부상 8명 (경상)
05:20. 계엄군들이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07:55~08:10. 학운동에서 무장폭도 민가침입하여 최득춘 등 일가족 3명 사살ⓢ
-학운동에서 무장폭도 의상실 침입하여 가족 3명 사살
-황금동에서 폭도 3명이 청자여관 영향약국 해동식당 침입하여 총기난사 후 금품 약탈ⓟⓢ
08:00.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은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08:45. 도청에서 폭도가 주요시가지 요소에 배치하고 경계근무ⓢ
10:00.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0:15. 폭도들은 짚차로 시가지 순회하면서 도청 앞 집결하라고 가두 방송ⓢ
10:30. 전교사령관실에서 진압작전 지휘관회의 개최, 3공수여단은 전남도청을, 11공수여단은 전일빌딩, 광주관광호텔, YWCA 건물을, 7공수여단은 광주공원을 각 특공조를 편성, 점령 후 20사단에 인계하기로 하고 작전 일시는 추후 하달ⓚ
11:10. 무장폭도 대부분 도피하고 극렬폭도 100여명만 잔류 활동ⓢ
11:30.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 개최, 계엄군 진입 소식을 들은 3만여명의 학생, 시민이 모여 계엄군을 성토ⓚ
12:00. 도청 앞에서 시위군중 5천여 명이 궐기대회 및 시위ⓢ
12:00. 도청 앞에서 5~6명을 1개조로 하여 모두 7개조의 기동타격대를 조직하여 시내 순찰, 계엄군 동태 파악, 치안 유지등의 임무를 부여ⓚ
14:00. 학생수습위원회는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14:00. 광주시민 도청 앞 금남로에 집결 시작ⓟ
14:30. 도청에서 대책위원회 개최, 도지사 부지사 수습위원들이 참석ⓢ
15:00.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도청 앞 시민 2~3만 정도 운집ⓟ 시민 행동 강령을 채택ⓚ
15:40. 군중 2만여 명 궐기대회 및 시위, 김대중 석방요구 등 구호 제창하며 시위ⓢ
16:00. 소준열 전교사령관은 광주비행장을 방문하여 3,7,11공수여단장에게 5월 27일 0시부로 작전 개시를 지시ⓚ
17:00.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이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을 브리핑ⓖⓦ
18:00. 전남도청 내에서 수습위원들 간에 마지막 회의 개최, 무기 반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총으로 위협, 무기 반납을 주장한 인사들은 21:00경에 모두 전남도청을 빠져 나감ⓜⓚ
19:00. 외국인 207명이 광주시에서 철수
19:10.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하고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 조치시킴ⓖⓦ
19:50. 폭도, 광주시장에게 요구사항 제시, 유류지원 식량지원 경찰치안유지는 비무장 요구 등ⓢ
20:10. 폭도들 서부경찰서 점거하고 경찰관 철수 요구ⓢ
-경찰관 전원 퇴청시킨후 폭도들이 입초 경계
-도청에서 무장폭도 230명이 도청 사수
21:00. 전교사 문관 4명이 전남도청에 잠입하여 TNT, 수류탄 496발의 뇌관을 제거ⓚ
23:00. 전남도청에서 상황실장의 지휘로 시민군 배치 현황을 점검ⓚ
24:00. 시내전화가 일제히 두절ⓖⓦ
사망: 1명 (학생) 부상: 6명 (경상)
계엄군 작전5호 발령, 병력 시가지 대거 투입, 기습작전으로 광주전역 탈환, 완전 평정
01:00~05:10. 충정작전 개시, 광주재진입, 8개 부대 7200여명 투입ⓟ
02:20~07:25. 20사단은 252/4305명이 서구를 제외한 전지역을 대상으로 충정작전에 참여하여 계획대로 작전을 완료ⓚ
02:00. 계엄군의 광주시 진입ⓦ
03:00.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하고 시위대 여성이 골목을 누비며 도와달라는 시내 가두방송ⓖⓦ
03:30. 작전개시, 계엄군 작전 4호 발령하고 11공수부대 병력을 투입하고 31사단, 20사단 병력을 시가지 압축ⓢ
04:00. 3공수여단 특공조 11대대 13/66이 도청 후문을 넘어 도청으로 진입, 전남도청 점령(05:21), 20사단 61연대에 전남도청을 인계(07:30)하고 부대로 복귀(08:00)ⓚ
04:00. 도청에서 시위대 17명이 TNT폭약 3천 상자를 깔고 앉아 자폭태세를 취한 채 극렬 저항하므로 사살ⓢ
04:00. 계엄군은 도청 주변을 완전 포위하고 금남로에서 시가전을 전개ⓖⓦ
04:00~07:15. 31사단은 56/693명이 충정작전에 참여하여 계획대로 광주 서구 지역 일신방직 일대를 점령하여 작전을 완료ⓚ
04:00~05.30. 전일빌딩 총격, 제1항공여단 61항공대 202, 203대 소속 UH-1H기동헬기가 전일빌딩을 향해 헬기사격(광주시청 발표)
04:10. 계엄군 특공대는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04:40. 관광호텔, 전일빌딩 점령ⓟ
04:45.~05:28. 시위대가 점거한 도청 광주공원 공설운동장 종합병원 전남대의대 관광호텔 전일빌딩 등을 탈환ⓢ
04:46. 11공수여단 특공조 61대대 4/33명이 전일빌딩과 관광호텔을 저항없이 점령하고, YWCA 건물 점령(06:20), 20사단 61연대에 인계(06:40) 광주비행장으로 복귀(07:05)ⓚ
04:55. 제3공수여단 14/66이 도청을 탈환ⓢ
05:00. 시민군 생존자들 자진해서 자수하고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 3명을 시민군이 체포해 계엄군과 경찰에 넘김ⓦ
05:04. 포교 병력, 공설운동장, 광주천변 백운동 철도 건널목 장악ⓢ
05:04. 11공수단4/23이 관광호텔 및 전일빌딩을 점령ⓢ
05:06. 7공수여단 특공조인 33대대 20/181명이 광주공원을 점령, 20사단 61연대 1대대에 임무 인계(05:42), 집결지로 복귀(07:25)ⓚ
05:08. 종합병원, 기교 전차 18대 진입점령ⓢ
05:10. 계엄군은 도청을 비롯한 시내 전역을 장악하고 진압작전을 종료ⓟⓖⓦ
05:17. 도청상공 500MD 3대 공중정찰ⓢ
05:28. 전남대 의대 병원 평정ⓢ
05:28. 기갑학교 전차 및 장갑차 배치, 생포 295명, 계엄군 사망 2명, 부상 11명ⓢ
06:00. 계엄군은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 방송ⓖⓦ
07:00. 3공수, 7공수, 11공수부대는 20사단 병력에 도청을 인계ⓖⓦ
08:00. 광주 전역탈환 완전 평정, 민간인 13명 사망ⓢ
08:50. 시내전화 통화 재개ⓖⓦ
사망: 10명 (군 1, 학생 4, 민간인 5), 부상: 9명 (중상 3, 경상 6)
1980.05.27. 주모자 정동년 등 2522명 검거, 조사(전남 합수부)
1980.06.06.~06.20. 검거자 중 404명 구속 송치
1980.07.29. 404명 구속 기소
2011.05.25.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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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5.18기념재단 | 5.18민주화운동 > 5.18타임라인
ⓢ국가안전기획부 |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1985.05
ⓕ펜앤드마이크 | 현대사자료실 > 5.18광주사태를 파헤친다 > 광주 계엄군 실탄지급 현황, 2019.01.27
ⓟ펜앤드마이크 | 전남경찰이 체험한 5.18, 2019.02.05
ⓦ위키백과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날짜별 상세 일지
ⓜ미래한국 |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5.18, 2016.06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검찰부 | 5.18 관련 사건 조사결과, 1995.07.18.
ⓣ국방부과거사진장규명위원회 |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007.07.24.
ⓒ신동아 | 20사단 충정 작전보고(국방부), 1988.12
@전남경찰서 | 경찰서 상황일지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검찰부 | 5.18관련 사건수사결과
@검찰청 | 5.18관련 사건 수사결과
@경찰청 감사관실 | 전남사태 관계기록